천리안 프로그래머포럼부터 시작해서 커뮤니티 운영자로 살아온 시간이 벌써 7년 반입니다.
천성적으로, 혹은 자라면서 글을 쓰기를 즐기는 편은 아니었지만 커뮤니티 운영자라는 직책 때문에 글자 그대로 자의반
타의반으로 글을 참 많이도 썼습니다.
그중에는 많은 분들의 공감을 얻고 지지를 받은 글도 있지만, 반대로 적지 않은 반박을 받은 글도 많습니다.
그리고 반박을 많이 받은 글에서는 많은 부분에서 제가 잘못 판단하거나 냉철하지 못했던 부분도 있었구요.
그렇게 많은 반응들을 접하면서 제 보잘것없는 글솜씨도 조금씩이나마 나아지고, 또 제가 잘못 생각했던 부분도
꽤 많이 생각을 바꾸기도 했습니다.
반대로 글 하나 쓰기가 그만큼 더 두려워지는 것도 사실입니다만...
별 생각없이 실제 업체명을 들먹이며 비난하다가 그 업체 직원으로부터 항의를 받은 적도 있고, 또 비전문가인 입장에서
글을 썼다가 전문가로부터 반박을 받은 경우도 있고... 그래도 되도록 부담은 느끼지 않으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조심은 해야겠지만 두려움과 부담감이 너무 커지면 그만큼 글 하나 쓰기도 어려워질테니까요.
가끔 가다 제가 꽤 장문의 글을 쓰는 경우에는, 짧으면 3시간 정도, 보통은 5~6시간, 아주 길면 하루 이상 걸리기도 합니다.
반쯤 써놓고 다시 손보고, 손보다 보면 생각이 다시 보충되고, 또 그걸 좀 보충하고 나면 다시 수정할 부분이 많아지고..
그러니 한두시간에는 글이 마무리될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온라인에서 글을 쓰다보니, 최근 1~2년 사이에 부쩍 더 신경이 쓰이는 것이 있습니다.
바로 제 글을 퍼다가 다른 곳에 옮기는 것입니다. 뭐 그 자체가 나쁘거나 그렇게 생각하는 건 전혀 아닙니다.
문제는... 제가 펌질을 약간이라도 고려하고 쓰는 경우도 있습니다만 그보다는 포럼 회원들만이 볼 거라고 생각하고 글을
쓰는 경우가 더 많다는 겁니다. 글이란 읽는 사람 개개인에 따라 다르게 해석되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래서 공통 관심사가
있는 분들을 대상으로 글을 쓰는 경우라면 필요없을 부연 설명이나 비유도 그 집단을 벗어나 다른 분들에게는 필요할 수
있습니다.
다른 사이트에 옮겨진 글의 경우, 옮겨진 글을 보는 분들의 시각이 볼랜드포럼에 오시는 분들과 같을 수도 있지만 다른
부분도 많을 것이기 때문에 더 생각을 많이 하고 쓰게 됩니다. 또 부적절한 상황에 펌질되는 경우도 종종 있구요.
약간 돌아가게 되지만, 저는 대형 포털들의 토론 사이트에 대해 아주 부정적으로 생각합니다.
며칠전 실명제 논란 관련으로 글을 쓰면서도 포털을 문제삼았지만, 대형 포털 사이트들의 경우 소속감이 없어 그만큼
무책임하게 글을 갈기게 된다는 것이 제가 포털 사이트에서 오가는 '여론'을 불신하는 이유입니다.
어제 문득 펌질된 제 글들이 어떻게 되어있나 하는 궁금증이 들어서, 구글에서 이래저래 검색을 해봤습니다.
그랬더니.. 그중에서 몇달 전에 제가 여기 자유게시판에 썼던 글 하나가 다음의 아고라에서 나오더군요.
만해님이 "대한민국 IT에는 미래가 없다. 그런데 난 즐겁다"라는 글을 퍼오셔서 그 글에 대해 제가 감상평(?)을 쓴 글이
아고라에 옮겨져 있었습니다.
http://www.borlandforum.com/impboard/impboard.dll?action=read&db=free&no=10465
http://agorabbs1.media.daum.net/griffin/do/debate/read?bbsId=D115&articleId=4979
보자 마자 좀 기분이 안좋았습니다. 아고라에서 글을 쓰는 사람들 자체가 자질이 모자라거나 나쁘거나 할 리야 전혀
없겠지만, 그쪽의 토론 댓글 문화를 대충 아니까...
뭐 예상대로였습니다. 이 글 쓴넘 대기업 프로그래머다, 귀족이다, IT사장넘이다, 문과 찌질이다, 책상앞에서 글만 쓰는
대표적인 사례다, 객관적이지 않다, IT 업계에서 일해보기나 한거냐 등등등...
지금 보니 조회수 30499회에 댓글만 134개...
그런데 정작 더 기분이 씁쓸한 것은... 아고라 회원들 중 무책임하게 댓글을 쓰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는 것보다는,
부적절하게 퍼날라졌다고 생각되기 때문입니다.
제가 처음 그 원문에 대해 답글을 쓴 것은 반박 차원에서 쓴 것이 아닙니다. 포럼에서 그간 제가 쓴 다른 글들을 보신
분들은 당연히 잘 아시는 거지만, 저는 IT 업계의 현실에 대해 긍정적으로 보지 않습니다. 잘못된 부분이 많고 개발자들이
제대로 대우를 받지 못한다고 수없이 썼습니다. 제가 글을 쓴 것은 명문대 출신의 엘리트 의식이 적지 않게 배어나는
원문에 대해 반감도 있었고, 또 똑같이 IT 업계가 열악하다고는 생각하지만 그 원인의 핵심을 원문을 쓴 분과 다르게
생각한다는 것을 쓴 거죠.
그러니까 어떤 면에서는 반론이기도 하고, 또 다른 면으로는 부연 설명이기도 한 겁니다.
저로서는 이 포럼의 회원분들이 읽으실 글이라고 생각하고 쓴 글이기 때문에 IT 업계가 역시 열악하다는 반복적인 의견을
굳이 더 쓸 이유가 별로 없었고, 그래서 원문에 대해 다르게 생각하는 부분만 써본 글이었습니다.
똑같은 글이지만 제가 쓴 글이 포럼에 있을 때와 저를 모르는 다른 분들이 절대 다수인 아고라에 옮겨진 글은 보는 사람의
관점에 따라 글의 해석이 완전히 달라진 겁니다. 어떻습니까.
참고로.. 제가 쓴 그 글을 보시면 아시겠지만 저는 퍼가도 되는지 물어보는 댓글에 대해 된다고 대답하지 않았습니다.
실제로 이런 결과가 나온 것처럼, 제 글이 엉뚱한 곳에 가면 엉뚱한 반응이 나올 거 같아서였기 때문입니다.
굳이 안된다고 대답하지 않은 것은, 개인 블로그 정도라면 대체로 자기에게 우호적인 분들이 들리는 것이 보통이고,
그래서 충분한 설명이 없더라도 문제가 커질 리가 별로 없을 거라 생각해서였습니다.
글을 퍼다 올리신 분이 어떤 분인지 몰라도... 실제로 그럴 생각은 전혀 없습니다만, 만약 제가 악한 감정을 품고
대처하려면 법적 대응도 가능할 수 있습니다. 비단 제 허락없이 글을 퍼간 것 뿐만 아니라, 제 글을 퍼다 올리면서
친절하게도 서두에다 '원문의 반론이다'라고 단정적인 설명을 붙여 놓으셨기 때문에 악플을 더 많이 받았다고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글의 저작권 관련 법조항에서 원문 내용의 수정/삭제 뿐만 아니라 내용을 추가하는 것도 저작권법 위반이
되는 이유가 바로 이런 면 때문입니다.
펌질 함부로 할 게 아니라는 생각 드시지요. ^^
물론 제 글에서 원문 전체 내용에 대한 전면적인 반박이 아니라는 점을 명확히 하지 않은 제 책임도 있다고 할 수 있지만...
뭐 그렇게 크게 화가 난다든지 그런 건 아닙니다.
커뮤니티 운영자 경력 7년 반, 한마디로 온라인에서는 산전수전 공중전 우주전 다 겪어봤습니다.
"어떤새끼 글이냐.. 확 ?려불라.. 이놈 만나면 주것써" 이런 시궁창 같은 글 수천개 봐도 열 하나도 안받습니다.
하지만 글을 퍼가실 때는 그에 따른 책임도 함께 퍼간다는 느낌이어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원래도 분위기가 그리 좋은 편이 아닌 아고라에, 게다가 그 원문으로 인해 벌집을 쑤셔놓은 것 같은 상황에서 '반박이다'
라고 설명까지 붙여서 퍼올린 것은 좀 그렇지요.
(마치 사람을 벌집 앞으로 밀치면서 얼굴에 꿀까지 잔뜩 발라주는 것 같지 않나요?)
마무리하자면... 이 글은 퍼간 분이 원망스러워서 쓰는 게 아닙니다.
하지만 실명제 운운까지 오가는 마당에... 모두가 네티즌이기도 한 우리 포럼 회원분들께, 글을 퍼다 옮긴다는 것이
어떤 정도의 책임과 의미인지, 또 퍼가면서 미처 생각지 못한 역효과가 어느 정도까지 파급될 수 있는지 예시해드리고
싶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