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쁘게 말하면 잘렸고 좋게 말하면 짤라 주기를 기다렸다(절대 회사에서 내보니
기 전 스스로 나와서는 안된다는 내무부 장관으로 부터 강령이 있었기 때문) --
회사에서 짤린 것은 처음이다. 연구밖에 모르는 사람을... CODE가 맞지 않는
회사도 있는 모양이다. 성품을 50% 본다고... 내 성품은 자타가 인정하는 데...
이 회사에서 말하는 성품이란 절대적인 충성을 뜻하는 것 같다. 약간 북쪽에서
놀고 있는 분과 많이 닮은 것 같다.
나이가 조금 많다 보니(39세, 사회에 흐르는 유교적인 영향) 회사가 금방 구해지지 않는다.
VC++쪽도 36세 정도로 제한하고 물론 델파이나 빌더는 더 한 것 같다. 그리고
부산, 경남쪽이다 보니 더 한 것 같기도 하고 제어, 장비쪽으로 원하기 때문에
더 자리가 없는 것 같다(아주 재미있음). 물론 지금도 부탁하고 메달리면 들어
갈 수 있지만... 조폭에 몸 바쳤던 선배의 말씀에 동감한다. "건달은 쪽팔리면
안된다."
어제 밀양에서 어머님이 올라 오셨다(정기 시찰). 그래서 회사 나가는 것처럼
하고 집을 나왔다. 가방을 들고 초롱초롱한 6개 눈들에게 의미 심장한 미소를
짓고 대문을 닫았다. 어디로 가지... 갈 때가 없다. 오후 7시까지는 어디에 있
어야 하는데...
지하철을 탔다. 2호선... 그래 끝까지 가보자... 늘 회사 집밖에 모르며 살았는
데... 좋은 경험이야 그런데 나의 마음이 작아지는 느낌... 숙쓰럽다고 해야하
나... 한마디로 쪽팔린다는 느낌이다. 마음과 행동이 일치하지 않아서 그럴까?
84세의 노모를 속인 죄 때문일까? 6살짜리 해찬이부터 13살 지은이까지 "아빠는
회사에 갔다"고 당부한 것에 대한 아픔 때문일까? -- 어제 막내 해찬이가 말했
다. "아빠 참 이상하다. 할머니 오니까? 회사 가네!", 옆에 듣던 둘째 딸 지원
고함을 지른다. "야 임마! 말조심해! 그런 말 하면 안된다고 했지!" ... 지원이
도 똑똑하지만 해찬이도 나이에 비해 너무 똑똑하다(나의 자식이라는 것이 믿어
지지 않는다. 나는 5학년 가을 쯤에 겨우 한글을 알았다. 해찬이는 5살 때 한글
을 알았다. 비교불허)
나는 아주 정직하다. 아니 결백하다고 해야 하나... 왠만하면 이렇게 복잡하고
쪽팔리는 연극을 하지 않는다. 이렇게 할 수 밖에 없는 것은 미워할 수 없는 나
의 어머니 때문이다. 몇 년 전에도 이런 상황이 있었다. 이틀이 멀다하고 전화
하셨다 --- 짜증난 목소리로 "오늘도 집에 있나!", 그 주파수와 진폭을 잊을 수 없다.
몇달을 그렇게 보냈다. 정말 죽고 싶은 심정이었다. 집에서 아르바이트 한다고
하면 믿지를 않는다. 옛날 분이기 때문에... 어릴적 조금 부족했던 자식으로 기
억하기 때문에... 우리 어머니도 남들에게 쪽팔리는 것을 아주 싫어하는 것 같다(
자신이 창피하다고 자식을 숨막히게 하지 말자! 나는 그래야지...)
"이번 역은 종착역인 장산 장산입니다" PCM 방식의 안내방송을 듣고 고개를 들
었다. 아 여기가 2호선의 끝, 장산이구나... 휴지와 A4 몇 장이 든 가방을 들고
무작정 사람들에 섞여 내렸다(바쁜 사람인냥...). 계단을 올라오니 두 갈래로
나누어 진다. 왼쪽 오른쪽 어디로 가지??? 왼쪽으로 가다 망설이다 오른쪽으로
나왔다. 아! 여기도 부산인가? 상쾌하게 느껴지는 맑은 공기, 넓은 도로, 질주
하는 차들... 누군가를 기다리는 미시들의 아름다운 표정과 자태... 도로 가장
자리에 심겨져 있는 늘씬한 나무들... 인도 한 가운데로 빨간 카페트를 깔아놓
은 것 같은 자전거 전용도로... 그 위쪽으로 쏫아 있는 고층 아파트들... 중간중간
작은 공원들이 줄지어 있다. 한마디로 시원하다.
인도를 걸어면서 "이곳에 나를 위한 작은 집... 아니 방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어쩔 수 없는 상황에 숨을 수 있는... 휴식을 취할 수 있는...
아이들에게 체면을 세울 수 있는 장소... 아지트?... 그러나 지금은 형편이 되지
않는다.
이런 생각이 몇일 전 일을 떠오르게 했다. 해찬이는 베개로 방 구석에 자기 집
을 만들고 있었다. 하긴 아이들은 이상하게 자신들의 작은 공간... 숨을 수 있
는 공간 만드는 것을 좋아한다. 우리 아이들도 그랬고 지금도 그렇다. 가만히
생각해 보니 나도 어릴 적에 나무로... 잡초가 우거진 땅 밑을 파서 아지트를
만들곤 했다. 그때는 정확한 논리성이 부족했고 그것을 만들면 왜 기분이 좋은
지를 인식하지 못했다. 오늘 나는 이 큰 비밀을 깨달았다. 39살, 실업자, 뚱뚱
한 몸, 갈 곳 없어 방황하는 이 시점에 어린시절 아지트를 만드는 이유를 명확
하게 깨달았다. 나는 아동 심리학을 전공하지 않았다. 그러나 나는 이제껏 아이
들의 마음을 잘 이해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해한 것이 아니라 통제를 잘 했
다는 것을 깨달았다. 한마디로 온유한 폭꾼이었음을 자각한다.
아이들은 무의식적으로(설명을 논리적이지 못하기 때문) 자기들 만의 아지트를
만든다. 어른들의 눈과 입에서 나오는 미사일을 피하기 위해서... 물리적인 힘
과 억압으로 부터 작은 평안을 찾기 위해서... 아지트를 만든다. 그들은 미사일
과 힘을 잘 느끼지 못한다. 왜냐하면 그것들은 사랑이라는 포장지로 감싸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들의 무의식은 그것을 폭력으로 간주한다. 그래서 무의식적
으로 아지트를 만들며 기뻐한다. 그냥 만드는 것이 기쁘다. 이것은 도저히 아이
들이 설명할 수 없다. 그들은 무의식적으로 그 안에서 평안을 느끼기 때문이다.
어쩌면 어릴 적 엄마 자궁 속에서 느꼈던 그런 평안을 갈구하는 것은 아닐까?
해찬이가 베개로 아지트를 만들자 경험이 많은 누나 둘이 도와 준다. 집에 있는
베개를 다 꺼내어 둔턱을 만들고 그 위에 엷은 이불을 덮어 완성했다. 나는 약
간 짜쯩난 목소리로 말했다. "쓸데없는 짓을 왜 하냐? 빨리 정리해... 알만한
너희들은 또 왜 그러냐!... 빨리 정리해라~" 그리고 문을 닫고 내 방으로 갔다.
화장실 간다고 나왔는데... 아이들의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이 녀석들 어디 갔
지... 그래서 큰방 문을 살짝 열어 보았다. 아이들 3명이 그들만의 아지트에 다
들어가 있었다. 그리고 자기들끼리 조용히 쑥덕거리고 있었다. 그때 나는 약간
큰소리고 말했다. "아직까지 정리 안하고 뭐하냐! 다 큰 너희들도 거기에 들어
간냐?"
몇일 전까지 나는 바보였다. 오늘 집을 나와 방황하지 않았다면 이 심오한 비밀
을 평생 깨닫지 못했을 것이다. 다음에 아이들이 아지트를 만들면 나도 거들어
주어야겠다. 그리고 같이 그 아지트에 들어가야지 그리고 아이들에게 이렇게 말
해야지 "얘들아 아빠도 너희들과 같단다!" --- 그리고 왠만하면 아이들이 이런
아지트를 만들 필요성을 느끼지 않도록 해주어야겠다.
경제적인 여건만 되면 장성한 아이들은 나가서 따로 거주한다. 아니 핑계를 되
면서(회사가 멀다. 저녁에 일을 할 수 없다. 시끄러워 집중할 수 없다) 독립한
다. 이때 명확한 대답은 "부모의 사랑의 간섭을 받기 싫어서". 위에 나열한 논
리로 유추해 보면 아이들을 과부호하는 부모, 폭력적인 부모 밑에서 자란 아이
들은 부모로 부터 더 먼 거리에 자신들의 아지트를 마련하게 될 것이다. 그러고
보니 몇일 전에 국민일보에서 본 짧은 이야기가 생각난다.
"아이를 과보호 하던 어머니 때문에 아이는 너무나 큰 고통을 격었다. 그러나
사랑으로 하시는 어머니께 괴롭다고 말할 수 없었다. 물론 장성해서도 어머니의
보호는 계속 되었다. 도저히 견딜 수 없던 딸은 어머니를 피해 알라스카로 이사
했다".
혹 우리들은 아이들을 감옥에서 키우고 있는 것은 아닐까? - 아이들을 통제하지
않으면 바로 자라지 못할 것 같은 두려움에서 말입니다.
부산 장산에 있는 PC방에서
박영목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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