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타고난 왼손잡이입니다. 그런데 어려서부터 부모님으로부터 왼손을 쓰지 않도록 교육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타고난 왼손잡이인 제가 수저 잡을 때와 펜 잡을 때는 오른손을 씁니다. 그리고 뭔가 손으로 하는 새로운 것을
배울 때마다 왼손으로 할 것인지 오른손으로 할 것인지 고민을 거듭했습니다.
탁구 라켓을 처음 잡을 때, 당구 큐대를 처음 잡을 때, 대학1학년때 테니스 라켓 처음 잡을 때... 그럴 때마다 왼손이 맞는
것인지 오른손이 맞는 것인지 혼란스러워했었죠. 제 생각엔, 아마도 제 우유부단한 성격은 이런 탓이 아닌가 싶습니다.
저같은 넘을 양손잡이라고 하겠지요? 하지만 제가 생각해볼 때 양손잡이란 사회의 강박으로 만들어진 기형에 가깝습니다.
오른손잡이와 왼손잡이가 전체의 90%가 넘는데, 억지로 만들어진 양손잡이인 저는 오른손잡이에도 왼손잡이에도
속하지 않습니다.
양손잡이의 장점도 전혀 없지는 않겠지요. 사리를 판단할 때 조금쯤은 양쪽의 선택 가능성을 더 깊이 생각해볼 수 있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더 큰 단점이, 사회의 절대 주류인 오른손잡이, 왼손잡이와 생각하는 방식이나 순서가 좀 다르다는
것입니다. 다른 것이 장점이 될 때도 많고 그런 사실을 잘 알고 있지만, 제가 자라면서 우월감이나 독립심보다 더 많이
느꼈던 것은 소외감이었습니다.
제 아들넘이 이제 네살입니다. 만으로 38개월이죠. 두돌이 넘으면서 조금씩 왼손을 많이 쓴다 싶더니, 지금은 완전히
왼손잡이입니다. 발도 왼발을 쓰더군요. 집사람은 오른손잡이인데, 제 아들이라고 티내는 것인지 왼손잡이로 자라가네요.
수저도 왼손으로 잡고, 칠판에 낙서할 때도 왼손을 씁니다.
공을 찰 때도 왼발, 뿔따구난다고 아빠에게 발길질하거나 주먹질할 때도 왼손, 왼발입니다.
여담입니다만, 제 아들이 까마득하고 흐릿한 기억속의 절 닮아가는 모습을 보거나, 혹은 아들에게 성격이 불같았던 제
아버지를 닮아가는 저 자신을 깨닫게 되면, 이런 게 인생이구나, 하고 한숨을 쉬게 됩니다. 어쩌면 저도 제 아버지가 살았던
폭을 벗어나지 못할 거란 운명일지도 모른다는 생각까지 들 때도 있습니다. 아니, 운명이라기보단 팔자라든지 굴레라는
표현이 맞을 거 같습니다.
아니 뭐, 다시 생각해보면 반드시 그렇지는 않을 거란 생각도 드네요.
전 아버지와 어린 저의 모습을 다시 기억하기에, 아버지의 전철을 밟지 않을 기회를 가지고 있으니까요.
음... 이렇게 일견 막막해보이다가도 어스름하게 희망이 보이는 것이 진짜 인생이겠죠?
어쨌든... 나이든 양반들이라고, 저희 부모님이나 처가쪽에서는 너무나 이쁘고 귀여운 손자가 왼손만 자꾸 쓰는 것을
그리 마뜩찮게 보십니다. 뭐 그 나이의 양반들이 당연하겠죠. 하지만 저는 제 아들넘에게 오른손잡이의 인생을 강요하고
싶은 생각은 조금도 들지 않네요.
물론 제가 양손잡이가 되어 가진 장점도 많지만, 저는 제 아들을 평범하게 키우고 싶습니다.
옛 어른들은 오른손잡이가 평범한 거고 왼손잡이가 소수라고 생각하셨는지 몰라도, 제가 살면서 겪은 것은, 타고난 왼손
잡이는 결코 완전한 오른손잡이가 될 수 없다는 것, 그리고 그렇게 되어 양손잡이가 되면 오른손잡이, 왼손잡이보다 더
소수이며 평범하게 살기 힘들다는 것이었습니다.
물론 저는 사람이, 세상의 어느 한 사람도 평범하다, 보통 사람이다, 라는 말을 믿지 않습니다. 모든 각각의 사람은,
자신만의 사는 방식이 있고 아무리 다른 사람과 비슷하다고 해도 마음속에 다른 누구도 이해해줄 수 없는 자신만의 비원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제 아들은, 많은 사람들이 말하는, 그런 보통 사람으로 키우고 싶습니다. 특별히 리더로 만들고 싶지도 않고, 너무
뛰어나서 튀는 사람으로 만들고 싶지도 않습니다. 그냥 자기가 즐겁게 할 수 있는 일을 평생의 업으로 삼고 거기에 만족할
줄 알면서 살았으면 합니다. 너무 큰 꿈으로 상처입지 않고, 너무 큰 욕심으로 지치지 않으면서 그저 성실하게 살았으면
좋겠습니다.
하긴... 이따금씩 제 아들넘에게서 툭툭 튀어나오는 절 닮은 점들을 보면 그렇게 살기는 그렇게 쉽지 않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만... 제가 해줄 수 있는 이상의 문제들은, 흔히 말하듯이, 제 복이겠지요.
왼손잡이 이야기를 하다가, 얘기가 샜네요. 갑자기 왼손잡이 얘길 한 것은 한겨레에서 기사 하나를 봐서입니다.
http://www.hani.co.kr/arti/education/witheducation/108116.html
여러분들도 자식이 혹시 왼손잡이더라도 너무 강박하지 말고, 제 모습대로 살게 두시는 편이 좋지 않을까 해서 써봤습니다.
흐음.. 모 나야 그런거에 별로 관심이 없어서리 ㅡ.ㅡ;;
그냥 밤에는 잠 좀 잘 자줬으면 하는 소원만 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