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는 정말 모처럼 가족과 함께 보냈습니다. 요즘 프로젝트 일정이 촉박해서 눈코 뜰 새 없이 바빴었죠. 최근 몇달 동안은 그래서 토, 일요일도 없이 출근하고, 사무실이고 집이고 거의 자는 시간만 빼고는 계속 BDS를 붙잡고 코딩하고 버그 잡느라 정신이 없었죠.
그제 회사에서 다른 팀 상급자 팀장과 정면으로 충돌해서 심하게 싸운 바람에 일이 하기 싫어졌습니다. 평소에도 사이가 그리 좋지가 않았는데, 사소한 문제로 트집을 잡길래 저도 그동안 그 팀장이 제 책임에 속하는 업무 영역을 침범한 사례들을 일일이 거론하며 불같이 화를 냈습니다. 뭐 한시간 가까이 서로 고성을 질러대며 싸우다가 결국 '기권승'을 했죠.
말싸움이나 전후 상황의 논리 면에서나 제가 이겼습니다만 역시 싸우고 나면 좋을 게 없습니다. 그 팀장이야 상급자이긴 해도 저도 회사 내의 입지에서 전혀 밀리지 않으니 화해할 필요도 없긴 합니다만, 그 동안 팽팽하게 유지되던 개발 일정에 대한 긴장감이 와르르 무너져버렸습니다. 결국 그 싸움 뒤로 몇시간 동안 잡히지도 않는 일거리를 붙잡고 낑낑대다가 평소보다 일찍 퇴근했습니다.
압박감과 긴장감이 풀려버려서인지 어제 아침에 눈을 떠 일어나니 말 그대로 몸과 마음이 훨 가볍더라구요. ㅎㅎ 그래서 모처럼 가족과 함께 하루종일 즐겁게 보냈습니다. 그동안 책상 밑에서 건들거리는 데에만 익숙해졌던 다리를 좀 혹사시켜서 힘들기는 했습니다만.
이런게 주말, 휴일이구나, 하는 느낌을 정말 오랜만에 느껴본 거 같습니다. 내일도 하루죙일 와이프, 아들넘 데리고 놀러다닐 생각을 하니 미리 들뜨면서 기대가 되네요. 바로 지난주 주말에만 해도 와이프에게 어떻게 변명하고 출근해서 작업 진도를 좀 빼볼까하는 궁리를 하고 있었는데 말입니다.
오늘 아들넘 데리고 돌아다니다가 문득 깨달은 것이 있었습니다. 그, 오백원 동전 넣으면 흔들흔들 움직이는 애들이 타는 장난감 차 있죠? 아들넘이 그 차를 참 좋아하는데, 오늘 놀러다니다가 그걸 발견한 아들넘이 태워달라고 떼를 써서 태워줬지요.
그런데, 차에 타서 핸들을 막 돌리면서, 인상을 팍 쓰면서 뭐라고 궁시렁궁시렁 하는 겁니다. 마치 뭔가 큰 불만이 있어서 도저히 참을 수가 없다는 투였습니다. 방금까지만 해도 방글방글 웃으면서 여기저기 뛰어다니던 넘이 인상을 쓰고 그러고 있으니 좀 당황스러웠습니다. 갑자기 왜 저러지?
와이프가 그 꼴을 가만히 보고 있다가 절 보면서 한마디 쏘아붙이더군요. 저 따라하는 거라고요. 첨에는 무슨 말인지 이해가 안되었습니다. 알고 보니, 아들넘 태우고 운전하고 다니면서 사소한 일에도 인상쓰고 화를 내어대는 모습을 아들넘이 배운 겁니다. 차선에서 줄을 서 있을 때 억지로 끼어드는 차나 깜빡이를 켜지 않고 가까이에서 불쑥 들어오는 차나.. 그냥 지나치지 못하고 '이런 싸가지 없는...'이라고 한마디씩 내뱉고는 했습니다. 저도 제 운전습관이 좀 나쁘다는 걸 알고는 있었습니다만, 아들넘의 뇌리에 박혀서 따라할 정도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던 겁니다.
순간 너무나 당황스럽고 혼란스럽더군요. 저 자신으로서는 당연히 이유가 있어서 그랬다고 생각했고 그게 잘못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해왔는데, 그게 네살밖에 안된 아들넘의 불량기로 전달된 겁니다. 제 안좋은 모습이, 그게 이유가 있었든 없었든 아들넘에게는 아무런 다른 판단의 여지도 없이 그대로 수용되었던 거죠.
자식은 부모의 거울이라고 하지요. 아들넘이 이제 슬슬 지맘대로 뛰어다니고 감당 못하게 떼를 쓸 정도가 되어가면서 요즘 가만히 생각해보면, 그 거울에 비치는 제 모습을 보면서 그동안 자신있고 당당하다고 믿고 살아왔던 제 신념들이 흔들린 적이 꽤 여러번 있습니다. 아마도, 많은 사람들이 말하는 나이를 먹는다는 것에는, 자기 자신이 나이를 먹는 데서 느끼고 배우는 것보다는, 자식이라는 거울에 자신을 비춰보면서 깨닫는 것이 더 많지 않나 싶습니다.
좀 미안한 말이지만, 아들넘이 나오기 전까지는 자식이 별로 필요하지 않다고 생각했습니다. 또 와이프를 만나기 전까지는 결혼도 별로 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와이프를 만나고, 또 아들넘이 튀어나와서 지금은 힘차게 아빠! 라고 부르는 것을 들을 때, 이전에는 미처 알지 못했던 제 인생의 반이 더 있고, 그것이 저 자신이 아니라 가족에게 속해 있다고 느끼게 됩니다.
사실 거꾸로 생각해보면, 제가 알고 싶었거나 원했던 인생의 반은 아니었습니다. 전 애초의 제 인생 계획대로 독신으로 혼자 살았어도 충분히 잘 살았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기쁨이든 고통이든 가리지 않고 즐기면서 치열하게 살아가는 스티일이거든요. 하지만 사람이 살아가면서 자신이 계획했던 대로보다는 오히려 우연과 인연에 의해 끌려가는 부분이 더 많기 때문에, 처음에는 원하지 않았던 가족을 만나게 되고 제가 원하지 않았던 나머지 인생의 반을 살아가게 된 것도, 마음대로만은 되지 않는 인생의 독특한 매력이라고 생각하고 그냥 그대로 즐기며 살아갑니다. 과거에 어떻게 생각했든, 지금은 이 가족이 없는 제 인생을 상상하지도 못할 만큼 소중한 존재들이 되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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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이팅입니다요~~~~ (^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