즘 전 매일같이 막차를 타고 퇴근합니다.
회사가 강남역이고 집이 성남 남한산성입구역 근방이라 9412번이나 9410, 9411번 버스를 타죠.
이 버스들의 막차 시간이 2시 17~22분 사이입니다. 근데 항상 간당간당하게 퇴근을 하기 때문에..
언제나 사무실 앞에서 버스정류장 쪽으로 걸어가는 200~300미터 사이에서 막차나 그 앞차를 놓치는 경우가 많습니다.
다른 버스 막차를 탈 수 있으면 다행인데.. 가끔가다가 그마저도 놓치고 어쩔 수 없이 택시를 탈 때도 있습니다.
택시비가 아주 많이 드는 것도 아니고 19,000원 정도 되는데.. 택시를 탈 때면 무쟈게 아까워서 속이 쓰립니다.
어젯밤에는.. 주머니에 딸랑 백원짜리 두개, 십원짜리 세개가 있었습니다. 택시비 택도 없죠.
막차 시간이 다가올 때 쯤, 전 사무실에서 한참 작업을 하면서 계속 피씨의 시계를 흘끔거리고 있었습니다.
2시 06분... 지금쯤 백업하고 사무실 단속하고 나가면 막차 시간에 2~3분쯤 여유있게 도착할 거라고 생각하고 일어섰습니다.
책상위에서 충전중이던 핸드폰을 집어드는 순간... 핸드폰에 표시된 시간은... 2시 13분... 헉!!!
빌어먹을 피씨 시계가 7분이나 느렸던 겁니다. 그걸 모르고 계속 피씨 시간만 보면서 여유를 부렸으니..
막차가 빨리 올 경우 막차 도착 예상시간은 겨우 4분 남았습니다!
당근 후다닥 정리하고 뛰쳐나갔습니다.
11시부터 빌딩 출입문을 잠그기 때문에 경비아저씨를 찾아 문을 열고 나간 시간... 2시 15분...
뛰었습니다... 저같은 배불뚝이는 웬만하면 잘 안뜁니다만... 상황이 급박하니까 허벌 뛰었습니다.
강남역 북쪽 방향에는 중앙차로에 버스 정류소가 오고 가는 방향으로 하나씩 두개가 있는데, 각각 신호등이 있습니다.
첫번째 신호등을 지나 뛰고 있는데... 9410번이 지나가는 게 보입니다... 헉.. 놓쳤다...
보통 9410번이 가장 마지막에 오는데...
그래도 혹시나 싶어서 기다려볼라고 제가 탈 버스정류장인 두번째 신호등 앞까지 갔습니다.
이런!!! 신호등은 빨간불인데 9412번 막차가 와서 서는 거 아닙니까!
중앙차로를 만드는 바람에 몇번 겪은, 10미터도 안되는 바로 코앞에서 신호등 때문에 막차 지나가는 걸 멀겋게 보고 있어야 하는 상황!!!
이런 빌어먹을!!! 이런 쉣!!!
더 열받는 것은, 버스의 위치 바로 2미터쯤 앞에 있는 횡단보도를 버스가 밟는 순간 들어오는 파란불!!!
단 1초도 안되는 차이 때문에 버스를 놓쳐버린 상황인 겁니다.
제가 횡단보도를 지나 중앙차로에 있는 정류장으로 건너갔을 때, 버스는 제가 조금전에 지나온 첫번째 신호등에 걸려서
서있고, 저는 불과 30미터 뒤에서 황망하게 그넘을 쳐다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제 앞으로 엉뚱한 방향으로 가는 9503번 버스가 들어옵니다.
보통 성남가는 버스들이 끝나고 나면 더 이상 들어오는 버스가 없는데, 희한한 일이었습니다. 과천이라고 써있더군요.
순간적으로 머릿속에서 계산기를 돌려본 다음, 희박한 가능성에 매달려보기로 하고 9503 버스를 올라탔습니다.
가능성이 높진 않지만, 만에 하나라도 제가 탄 9503 버스가 바로 앞에 서있는 9412번 버스를 앞지르면 잽싸게 내려서
갈아탈 계산을 한 겁니다. --;;;;
9503번 버스를 탄 순간부터 제 가슴은 쿵쾅쿵쾅 뛰기 시작했습니다.
단돈 만구천원 때문에 이래야 한다는 게 참 쪼잔하고 비참할 수도 있겠지만, 일단 제 주머니에는 2백3십원 밖에 없고,
역시 12시가 넘어서야 이제 퇴근한다고 전화를 했던 집사람을 깨우고 싶지도 않았습니다.
그래서 9503 버스 안에서 전 정말 글자 그대로 손에 땀을 쥐고 앞에 가는 9412번 버스를 노려보고만 있었죠. 으으~~~
여기서부터 약간의 지리적인 정보가 필요합니다.
제가 탄 버스정류장은 강남역 북쪽 방향에 있지만 정확하게 명칭은 강남역 정류장이 아니라 교보타워 정류장입니다.
교보타워에 가깝죠. 그리고 거기서 성남가는 방향으로 강남역 4거리를 지나고 나면 바로 '강남역' 정류장이고요.
다음은 뱅뱅사거리 정류장, 그 다음으로 지하철 양재역 사거리를 건너면 양재역 정류장, 다음으로 교육개발원 정류장입니다.
그 다음은 양재꽃시장, 그 다음은 모릅니다. 신경쓰고 안봤거든요.
근데 이 할아버지 버스 운전사, 운전이 정말 천하태평식인 겁니다. (아마 그래서 어제 9503 막차가 늦게 왔던 거겠죠)
바로 앞에 있는 버스와 간격도 유지 못하고, 강남역 사거리를 통과하는 동안에 벌써 한참 멀리 떨어져버렸습니다.
게다가 뱅뱅사거리 정류장에서, 정류장에 서있던 어떤 젊은넘이 버스가 다가가자 손을 들었다가 내리는 바람에 속도를
거의 정지할 정도로 늦추고, 그래서 뱅뱅사거리 정류장을 통과하는 순간 9412번과의 거리가 한참 멀어졌습니다.
이젠 앞에 가는 버스가 시내버스인지 무슨 통근버스인지도 구분도 안되고 빨간색이라는 것만 겨우 알아볼 정도로 멉니다.
설상가상, 정류장을 지나면 바로 뱅뱅사거리인데, 여유있게 운전하는 아저씨의 솜씨 덕분에 노란불에서 서버렸습니다!
이제 안보입니다. --;;;;
양재역 사거리에서 또 아슬아슬하게 신호에 걸렸습니다. 큰 사거리 두개의 긴 신호 두번을 다 놓친 겁니다.
앞서 도망갔던 9412번 버스도 같이 걸려있으면 얼마나 좋겠습니까만.. 없습니다.
포기했습니다. T.T
과천쪽으로 꺾으면 일단 내려서 다음 대책을 생각해보자... 했습니다.
어차피 버스는 놓친 것, 밤은 길고, 내려서 천천히 생각해보자.
결혼 전에는, 독립문 앞에 살 때 집사람 만나러 바로 지금 집 옆에 있는 처가집으로 집사람을 만나러 갔다가 서울로 나오는 막차를 놓치곤 했습니다. 그럴 땐 그냥 걸어서 양재역이나 강남역까지 왔습니다. 그러면 지하철 다니는 시간이 되거든요.
뭐 좀 나이는 더 먹었지만, 걸을 수도 있겠고.. 일단 내려서 생각해보자.
그런데.. 양재역 정류장을 지나 좀 달렸을 때..
어찌된 일인지, 한참 앞서가고 있어야 할9412번 버스가 500미터 정도 앞에서 신호에 걸려 얼쩡거리고 있는 겁니다!
게다가 그보다 먼저 놓쳤던 9410 버스도 바로 그 앞에 있습니다!
다시 가슴이 쿵쾅쿵쾅....
따라잡아라, 따라잡아라!!!!
다음 정류장은 교육개발원... 제가 탄 버스 운전사가 분발한 건지 아님 앞서가던 버스가 느려진 건지, 앞서가는 두대의
버스 두대가 서고 바로 뒤에 제가 탄 버스가 섰습니다. 그렇지만 지금 내려서 갈아탈 수가 없지요?
내리는 동안에 부웅~ 가버리면 저는 닭쫓던 개 되는 겁니다. 먼저 내려야 합니다.
다음은 꽃시장! 여기서 앞서가던 버스 두대 사이에 섰습니다.
하지만 내리려고 일어서려는 순간 뒤에 있던 9412가 부웅 출발하는 게 보였습니다. 에고!!!
이제 딜(?)을 할 시간.... --;;
다음 정류장에서는 제가 탄 버스가 앞서서 먼저 서기를 바라면서 벨을 누르고 일어섰습니다.
그랬더니.. 버스 아자씨가 큰 소리로 묻더군요.
"다음에 내리려고요?"
"넹"
"다음은 화물차고진데?"
머리가 멍... 전혀 못들어본 정류장 이름입니다. 그럼 그 정류장은 과천쪽으로 꺾은 후인 겁니다.
닭쫓던 개 됐습니다. --;;;;;;;;;;;;;;;;;;;;;;;;;;;;;;;
역시 이런 위기의 순간에는 머리가 잽싸게 돌아가야 합니다...
주위를 둘러보니 버스가 신호에 서 있습니다. 그리고 바로 뒤에 9412가 서 있습니다!!!
"아저씨. 여기서 좀 내려주실래요?"
아저씨.. 못들은 척 합니다. 헉.
"아저씨!!! 문 좀 열어주세욧!!!"
그제서야 하차문을 엽니다.
그 사이에 신호가 바뀌고 뒤에 서 있던 버스가 가버리면.. 또 개 됩니다.
땅에 발을 딛자 마자 버스 뒤로 냅다 뛰었습니다. 정말 천만 다행으로 아직 뒤에 서 있습니다.
9412 버스가 가장 안쪽 차선에 있어서 도로로 뛰어 들어가야 했지만, 그런 거 따질 때가 아닙니다.
후다닥 뛰어가서 승차문을 두들기는 순간 신호가 바뀌는 게 보입니다.
속으로, '아자씨... 제발.. 제발.. 열어주세요... 흑흑...'
아자씨.. 힐끗 쳐다보더니 아주 잠깐 동안 뭔가 고민합니다.
차로 중앙이고 신호도 바뀌었습니다. 그냥 가도 됩니다. 아니 원칙적으론 거기서 태우면 안되지요.
근데 문을 열어줍니다. 우와앗!!!!!
버스에 올라타면서 힘차게 소리쳤습니다. "감사합니다!!!"
일부러 소리를 친 게 아닌데 힘차게 나오더군요. 승객들이 다 쳐다봅니다.
자리에 앉아도 금방 가슴이 진정이 안되더군요.
이렇게 해서 한밤의 대질주는 끝나고, 무사히 집에까지 들어갔습니다.
집에까지 가서도 쉽게 긴장이 풀리지가 않더군요. ^^;;
쓰고 보니 제가 정말 눈물나게 돈이 없고 딱한 지경이라 그런 비참한 짓을 한 것처럼 비춰질 수도 있겠는데.. --;;
사실 제가 만구천원이 눈물나게 아까워서 그 쌩쑈를 한 것은 아니지요.
팀원들에게 술값으로 십몇만원씩 지르는 건 예사고 여기저기 투자하거나 통장에 든 돈도 꽤 됩니다.
근데 당장 지갑에 돈이 없.고. 또 저보다 더 힘들 와이프를 깨워서 택시비 들고 나오라고 하고 싶지가 않으니 어쩝니까.
중앙차로제라는 이상한 걸 만들어서 자주 코 앞에서 버스를 놓치게 된 건데.. 이명박이 정말 밉습니다. --;;
물론.. 근본적인 원인이야 이상하게 막차시간이 다가올 수록 막혔던 부분이 술술 풀리는 제 머리 탓인데... 쩝~
어쨌든..
오늘은 일찍 일을 마치고 한시 전에 나가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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