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생각은 좀 다르답니다. ^^
억지로 MS의 비전들을 평가절하하려고 노력하는 것이 아니라, 예로 드신 MS의 새로운 기술적 비전들은 그다지 특출난 정도의 것들은 아니라고 생각됩니다. 그중 상당수는 이미 예전에 다른 선구적인 인물들이 먼저 구현 혹은 구상했던 것들이고, 몇가지 정도는 MS에서 선보이기 오래 전에 제가 먼저 구상했던 건들도 있습니다.
이 정도 말하고 있는데 '아, 흔히 보는 MS 비하론이군' 이라고 성급하게 판단하시면 좀 곤란하고.. ^^
알려진 대로 MS가 뛰어난 엔지니어들을 영입하는 데에 돈을 아끼지 않은 덕분에 세계 각지의 일류 개발자들, 그것도 비전을 만들어낼 능력이 있는 개발자들 상당수가 MS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그런 (상당히) 뛰어난 사람들이 놀고 월급을 받는 것이 아닌 이상, 그 많은 숫자만큼 역시 많은 아이디어들과 비전들이 나올 것이고, 그런 아이디어들 중 장기적 전략에 맞고 시너지를 창출할 수 있는 아이디어들이 채택되어 기업의 비전이 될 것입니다. 그런 많은 (꽤) 뛰어난 엔지니어들이 집합해있는 MS에서 그런 준수한 정도의 아이디어들이 안나온다면 오히려 이상하지요.
산을 가리키는데 나무만 본다는 얘기가 있지요. MS를 논하면서 빌 게이츠를 떠올리는 경우가 비슷한 경우일 듯 싶습니다. 기업이 어느 정도 이상의 규모로 성장하고 나면 그 기업의 비전은 어느 한 사람이 떠맡을 수 있는 수준의 문제를 벗어날 것입니다. 몇백명 수준의 기업이라면 능력있는 한 사람이 모든 비전을 감당할 수 있겠지만, 그 수준을 넘어가면 기업의 방향을 잡는 '비전'은 창업자, 경영자라 해도 수천 이상의 임직원들 전체를 좌우할 만한 압도적인 비전을 가질 수는 없을 겁니다. 그래서, 빌 게이츠를 바라보면 MS가 보이지 않습니다.
그럼, 다른 기업들은 하지 못한(혹은 하지 않은) 일들을 어떻게 MS는 하고 있느냐, 라고 반문할 분도 있으실 겁니다. 저는, 그 이유를 좋게 말하면 시너지이고, 나쁘게 말하자면 독점의 힘이라고 봅니다. OS 독점이라는 힘은 어마어마한 권력입니다. 여기다 돈이 될 만한 뭐든 끼워팔 수 있습니다. 다른 경쟁 기업들이 아이디어는 있어도 쉽게 뛰어들 수 없는 사업 분야들도, OS 독점을 하고 있는 상황에서는 충분히 현실성이 생깁니다. 쉽게 이해할 만한 예를 들자면, MS가 종종 특허 위반으로 소송을 당하고는 결국 거액의 합의금을 넘겨주고 마무리하는 경우가 있지요? 여러 중소 기업들이 아이디어는 있어서 특허를 내놓고 본격적으로 사업을 하지 못한 아이디어들도, MS의 거대한 규모와 OS 독점이라는 기득권 아래에서는 현실성이 생기고 해 볼만한 사업이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다른 기업들이 본격적으로 시도하지 않았던 일이 MS에서 현실화되는 것은, 어떤 경우엔 힘보다는 어쩔 수 없는 MS가 처한 어쩔 수 없는 현실적 압박 때문일 수도 있습니다. PC용 OS와 오피스의 독점이라는 시장 상황은 반드시 이익만 되는 것은 아니어서, 필연적으로 성장의 중단에 이를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전문이 아닌 새로운 분야에, 어마어마한 돈을 허비해가면서도 과감하게 뛰어들 수밖에 없는 거죠. XBOX가 지금 시점에서는 MS가 해 볼만한 사업이 되어가고 있는 거 보이겠지만, 지금까지 투자한 어마어마한 자금을 생각한다면 XBOX는 지금도 손익분기점은 한참 멀었을 것이 당연하고, 소니나 닌텐도에서 회심의 일격 한방이면 다시 손익분기점이 몇년을 도망가는 상황이 벌어질 것입니다. 그런 모든 것을 각오하고도 MS가 XBOX같은 고위험 사업에 어마어마한 투자를 계속하고 있는 것은, MS의 기존 주력 시장이 이미 성장 정체에 들어갔기 때문이겠죠.
닷넷 같은 경우는, 위의 두 이유에 모두 해당된다고 생각됩니다. MS와 같은 기술력과 현금이 있더라도, OS 독점이 없는 상태에서 닷넷을 지금처럼 무대뽀로 추진할 수 있을까 생각해보세요. 또, 이미 OS 시장은 성장 정체에 이르렀고, (서버 OS의 경우도 리눅스를 제외하고 소규모 서버처럼 쉽게 점령할 수 있는 만큼은 이미 다 점령해버렸죠) 기존 고객의 업그레이드율조차도 지속적으로 떨어지고 있는 위기 상황입니다. MS로서는 기존 플랫폼의 판을 엎지 않고는 회복하기가 점점 더 어려워지는 난감한 입장에 있는 겁니다.
예전에도 많이 했던 얘기들을 또 반복하게 되는데... 2000년 이후로 MS에서 나온 솔루션, 기술, 제품 어떤 것을 봐도 킬러 애플리케이션이라고 할 만한 것이 없습니다. MS가 대대적으로 홍보하는 새로운 기술은 대부분 핵심적인 혁신이 없는 단순 모방이 대부분입니다. 닷넷? 라이브 검색? XBOX? 가상화?
물론 2000년 이전에도 기술적으로 아주 대단한 것이 많지는 않았지만, 적어도 윈도우 3.1, 윈도우 95, 비주얼 베이직은 그 파급효과가 어마어마했습니다. 기술적으로 대단하든 아니든 단기간에 시장을 휩쓸어버릴 잠재력을 가진, 그런 것이 킬러 애플리케이션이라고 할 만한 것들입니다. (물론, '그 정도를 킬러앱이라고 부를 수 있느냐' 라고 논쟁하고 싶어하는 분들도 있겠습니다만)
MS가 닷넷에 들이는 공이 참 엄청나죠. 그럴 듯한 소득이 나오고 있는 것도 아닌데 말입니다. 거꾸로 말하자면 MS로서는 그만큼 닷넷에 목을 맬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는 얘기가 되고요. 그리고 닷넷에 가져다 붙이고 있는 아기자기한 각종 기술들도, 개발자들에게 신기하고 재미는 있겠지만 그것이 대세가 될 지는 MS가 스스로 결정하지 못합니다. MS가 압도적인 홍보력으로 밀어붙이고 있는 것들을 멍하게 보고 있자면, 뭔가 생각의 기준을 확실히 잡지 않으면 당연히 MS가 선택한 길이 곧 미래다, 라는 그런 세뇌에 빠지게 됩니다.
그런데 지금 이 순간에도 전세계의 개발 시장은 닷넷이 아니라 자바와 C/C++ 중심으로 돌아가고 있습니다. 그리고 대부분은 가까운 장래에 닷넷으로 옮겨갈 진지한 고민을 하고 있지도 않습니다. 자바 진영 어디를 가보세요. 닷넷에 위기를 느끼고 있는지. 또 C/C++ 개발자 누구에게 물어보세요. 매니지드 C++ 확장에 매력을 느끼는지. 다분히 제 경험적인 거라서 객관적이지는 못하지만, 지금 당장 현실적으로 자바나 C/C++에서 닷넷으로 이전을 생각하는 개발자들의 대부분은 중급이나 고급 개발자가 아니라 당장 자바나 C/C++에도 제대로 익숙해지지 못한 초급 개발자가 더 많았다고 느껴집니다. 초급 코더가 많아도 닷넷쪽이 대세가 되기는 커녕 오히려 더 부실해지기만 할 겁니다.
개인적으로, 삼국지를 읽다보면 참 어이가 없기도 하고 재미있기도 한 부분이, 제갈량의 천하3분계라는 아이디어입니다. 사실 촉나라가 위치한 그쪽은, 땅 덩어리는 꽤 넓어보일 지 몰라도 한나라 전후의 중국 역사상으로 볼 때 그다지 중국의 중심으로 쳐주지도 않는 낙후지역이죠. 하지만 실리는 형편없어도 대외적인 명분상의 효과는 대단했습니다. MS가 닷넷으로 벌이고 있는 홍보 플레이가 딱 비슷하다고 생각됩니다. 천하의 실리는 자바와 C/C++이 모두 차지하고 있는데, 마치 닷넷이 자바나 C/C++과 호각의 대결을 하고 있는 듯한 이미지를 계속 심어주려고 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제갈량의 천하3분계가 결과적으로 성공하지 못했듯이, 명분과 이미지는 비교적 단시간내에 실리를 얻어내어야만 실질적인 효과가 생기게 됩니다. MS는 초기의 닷넷 비전에도 상당한 공을 들였고, 당시에는 성공에 어느정도 확신이 있었을 겁니다. 하지만 불과 2년 정도만에 오판을 시인하고 대대적인 비전 전환을 선언했고, 그럼에도 6년이 넘어가는 지금까지도 닷넷의 비전은 개별적으로도 꽤 멋진 잡다한 기술들을 단순히 모아놓은 것에 불과합니다.
결론은 XML이다, 라는 명제는 MS가 닷넷에 뭉뚱그려놓은 그 모든 잡다한 기술들이 마치 유기적인 관계에 있는 것처럼 개발자들을 현혹시키기 위한 억지 춘향이식 논리에 불과합니다. XAML이 XML 기반인 것과 웹 서비스가 XML 기반 프로토콜인 것이 어떤 유기적이거나 필연적인 관계가 있습니까? 또, ASP.NET에서 JIT 컴파일을 도입했다고 해서 그 JIT 컴파일이 닷넷 바이너리로 된다는 것이 어떤 관계가 있습니까? 이미 상당히 닷넷의 허상에 현혹된 분들은, 중간코드로 컴파일되기 때문에 여러 언어 사이에서 중립적일 수 있다, 뭐 그런 말을 할 지도 모르겠습니다만, 닷넷 언어들이 공유하는 것이 IL 바이너리가 아니라 네이티브라면 왜 안되는 거죠? 왜 굳이 메모리도 더 잡아먹고 속도도 느릴 수밖에 없는 IL 코드를 고집할까요?
MS는 개발자들이 마치 MS가 설계한 거대한 스케일의 복잡다단한 청사진의 초입에 들어서고 있는 듯한 느낌을 가지게 하려고 무진 애를 쓰고 있습니다. 보통, 엔지니어들은 자신이 쉽게 상상하기 힘들었던 복잡하고 거대한 스케일의 설계도를 접했을 때 압도되는 경향이 있습니다. 하지만 MS가 그리고 있는 닷넷이라는 설계도는 그렇게 유기적인 관계에 있는 아이디어들의 조합(결과적으로 그 거대한 규모만큼의 거대한 시너지 효과를 기대할 수 있는)이 아니라, 단지 여러 기술들의 투명한 청사진들을 겹쳐놓은 것에 불과합니다.
그리고 MS는 실질적으로 존재하지 않는 시너지가 마치 존재하는 것처럼 개발자들에게 계속 암시하고 있습니다. 물론 MS의 생각대로 닷넷 비전이 착착 진행되었더라면 일정 단계에서는 처음에는 존재하지 않았던 시너지가 현실에 나타나는 시점이 오게 될 것입니다. 하지만 애초에 존재하지 않았던 시너지가 생기려면 그 사이에 상당한 간격, 갭이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MS가 바라는 것은, 아마도 그 갭을 어리숙한 개발자들이 다리가 되어 MS가 밟고 지나가려는 것일 겁니다.
제가 지금 나름대로 냉정하고 진지하게 글을 쓰려고 노력하면서도, MS가 개발자들을 밟고 지나가려 한다, 이런 좀 과격할 수도 있는 표현을 큰 부담없이 쓰는 것은 꽤 이유가 있습니다. MS가 무리하게 닷넷에 올인함으로써 그 과정에 필요한 개발자들은 필연적으로 이용당하고 소모될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첫번째로, 이전에도 지적했던 것인데, MS가 초기에 장담했던 그런 화려한 미래는 6년이나 지난 지금도 먼 미래라는 것입니다. 6년이면 이 업계에서 얼마나 긴 시간인지 다들 아실 겁니다. 물론 어느 분야든지 고급 개발자들은 잘 먹고 삽니다. 그런데, 닷넷(정확하게는 닷넷에 붙여진 온갖 미사여구들)에 현혹되어 올인했던 초급 개발자들은, 지금쯤 뭘 하면서 먹고 살고 있을까요? 아직까지도 MS가 벌여놓은 거창한 판에 비하면 닷넷 시장은 제대로 열리지도 않았고 MS의 자칭 경쟁상대인 자바쪽에서는 아무런 위협조차도 못느끼는 상황인데, 그 많은 초급 닷넷 개발자들은 어떡합니까. MS가 고용이라도 해줬나요?
두번째는, 닷넷의 기술적 비전 자체가 안정적이지 못하고 오락가락하고 있는 것입니다. 최근의 닷넷 3.0을 보면, 애초에 WinFX라고 내놓았던 것을 닷넷 3.0으로 이름을 바꾸고, 그럼에도 여전히 닷넷 2.0 위에서 동작하고, 게다가 많은 인터페이스가 닷넷 2.0과 중복되면서도 2.0을 바꾸지 않고 그 위에 덜렁 올려놔버렸습니다. 이런 엄청난 대혼란에, 개발자에 대한 배려는 어디쯤에 있는 걸까요? 어디에도 없습니다. 닷넷 3.0이라고 거창한 이름까지 붙여버린 상황에, MS가 앞으로 기존 닷넷의 프로그래밍 인터페이스와 중복되는 부분은 새로운 WinFX 위주로 나아갈 거라는 의도가 너무도 뻔하게 보이는데, 그럼 그동안 전통적인(?) 닷넷을 공부해온 개발자들은 뭐가 됩니까? 이렇게, MS 스스로가 닷넷의 기술적 비전을 명확하게 제시하지 못하고 우왕좌왕 오락가락하는 상황에서, 과연 개발자들이 안정적인 터전을 잡고 안심하고 밥벌이에 매진할 수 있습니까?
쩝... 어느 정도는 저도 이미 예견했던 상황입니다. 닷넷이 시장에 먹히지 않는 상황이 되면 MS는 닷넷조차도 헌신짝처럼 버리고 새로운 기술로 옮겨갈 거라고 여러번 언급했었지요. 이제, 닷넷 4.0 혹은 5.0 쯤에서, 기존의 인터페이스를 모두 홀라당 버려버리고 새로운 WinFX 기술로만 가겠다고 선언할 수 있는 기초가 다져졌습니다. 기존 개발자들이 반발하면? MS가 언제는 반발하는 개발자들에게 대꾸라도 한마디 한 적이 있습니까.
어쩌면, 지금의 닷넷 기술의 혼란은 앞으로 다가올 것에 비하면 시작에 불과할 지도 모릅니다. MS는 이미 지금도 윈도우 비스타에 어마어마한 투자를 하고 있습니다. MS 스스로도 사상최대 규모라고 말할 정도니까.. MS의 입장에서는, 비스타는 XP같은 실패작이 되어서는 절대로 안됩니다. XP 이후 비스타를 출시하기까지 만 5년이 넘게 걸렸는데, 게다가 사용자들을 꼬드길 수 있는 온갖 아이디어들을 다 총집합시킨, MS의 내부 역량을 모두 집결시켜 심혈을 기울인 버전인데, 윈도우 95/98까지는 아니더라도 그와 비교할 정도의 성공을 하지 못한다면, MS 자신도 그 이후의 치명적인 사태를 쉽게 예상조차 하기 힘들 것입니다.
그런데, 제 개인적인 의견으로는, 비스타는 XP의 수준보다는 조금은 나을 수 있겠지만, MS가 간절히 바라는 수준에는 결코 미치지 못할 것입니다. 윈도우 95/98이 폭발적인 성공을 거둔 가장 큰 원인은, 기술적으로 그만큼 뛰어났다기보다는 시기를 잘 탄 영향이 훨씬 컸습니다. PC가 폭발적으로 보급되는 시점이었고 관련 벤처기업들이 우후죽순식으로 생겨나는 등 시장이 엄청나게 커지고 있던 와중이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어떻습니까? 이미 모든 기업과 모든 가정에서 필요한 숫자만큼의 PC가 돌아가고 있습니다.
그럼 비스타에 도입되는 기술들이 너무나 혁신적이어서 사용자들이 그만큼의 메리트를 느낄까요? 3D 기반의 에어로 글래스, 분명히 멋진 아이디어입니다. 그런데, 시장의 절반을 훨씬 넘는 기업 고객들의 입장에서는 업무상으로는 아무런 도움도 안되면서 각종 비용만 더 올라가는 기능입니다. 강화된 보안? MS가 장담하고는 있지만 이것도 전례를 보면 그다지 믿을만하지 못합니다. 그러면서도 비스타를 도입하려면 비스타 자체의 구입 비용 말고도 피씨 하드웨어까지 교체해야 합니다. 기업에서는 비스타를 환영해야 할 아무런 이유가 없는 상태인 겁니다.
그러면 가정에서는? 이 글을 읽는 여러분 대부분은 엔지니어이고 그중 상당수는 신기술 매니아입니다. 그래서 3D UI에 열광해서 피씨를 교체하는 비용쯤이야, 할 분들도 상당히 있을 것이고 새로운 방식을 배우는 데에 만만찮은 재미를 느낄 분들도 많을 겁니다. 그런데 여러분의 가족이나 친척을 생각해봐도 그럴까요?
그러면 도대체 얼마나 팔려야 성공했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 물론 그걸 정확히 추정하려면 MS가 투입한 리소스의 정확한 양과, 비스타가 실패했을 때 다른 사업부문들과 MS 자체가 받는 충격을 감안할 수 있어야 할 것이므로 MS의 최고위 중역들만이 손익계산서를 작성할 수 있을 겁니다. 하지만 적어도 확실한 것은, 시장의 법칙에서는, 전국 천만관객을 돌파한 영화라고 하더라도 제작비 투자가 그 이상이었다면 실패한 영화라는 것입니다.
MS에게, 개발자들은 엔드유저인 일반 사용자 고객들이 있기 때문에 의미가 있습니다. 엔드유저 제품인 비스타가 시장에서 성공하지 못하면 연계될 수 있는 모든 사업부문들이 다 흔들립니다. 개발자 전략에 가까운 닷넷은 그 정도가 더 심할 것은 당연하겠지요. 비스타가 시중에 시판되고 나서 6개월이나 1년쯤 후 기대했던 성과가 나오지 않는다면, MS 자신으로도 초비상이 걸리겠지만, 개발자를 겨냥한 닷넷 전략쯤이야 통째로 뒤집어도 별로 이상하지 않을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MS가 주창한 '신기술'이 뒷걸음질쳐서 과거로 돌아갈 가능성도 얼마든지 있을 수 있다는 겁니다.
이런 전반적인 상황들을 생각해보면, 참 어처구니가 없을 수밖에 없습니다. MS는 지금 역사에 다시 없을 최대의 도박을 하고 있고, 그 성공 가능성은 누구도 보장하지 못합니다. MS는 승률을 조금이라도 높이려고 시장도 충분하지 않은 닷넷에 개발자들을 끌어들이려고 혈안이 되어있고, 실제로 상당수 개발자들이 불확실한 MS의 미래 열차에 몸을 맡기고 있는 겁니다. 일반적으로, 우리는 이런 상황을 사기극이라고 합니다. 반드시 전체 시나리오가 모두 사기적이지는 않았더라도, 고의적으로 성공 가능성을 과장하고 실패 가능성은 은폐함으로써 객관적인 판단을 하지 못하게 하는 이런 상황 말입니다.
그럼, 만에 하나 닷넷과 비스타가 성공하면? 그때 가도 늦지 않습니다. 선점? 기업도 아닌 개인일 뿐인 개발자들이 얼마나 선점의 효과를 누릴 것 같습니까? 그렇다고 그 기간동안 놀고 먹는 것도 아니고 말입니다. 반면 MS가 원하는 대로 줄줄 따라갔을 때의 리스크는 너무 큽니다. 놀이로서가 아니라 인생의 중대한 선택의 기로에서도 이런 위험한 모험을 즐기고 싶다는 분이 아니라면, 일단 좀 더 기다려보라고 말하고 싶은 겁니다. 아니면, 차라리 이미 쉽게 흔들리지 않는 철옹성을 선점한 자바쪽이 낫다고 말할 수 있겠고요.
자바보다 닷넷이 기술적으로 낫다라든지 개발자에게 편하다든지, 그런 것은 생각보다 실제 시장에 미치는 영향이 그리 크지 않습니다. 어차피 자바와 닷넷은 주력 시장이 SI이므로, 개발자 개인이 특정 기술이 더 편하다고 선호한다고 해서 대세가 바뀌지 않습니다. 네이티브 방식으로 개발한 기존 솔루션이 잘 돌아가던 경우에도 굳이 그걸 돈을 들여 웹방식으로 바꿔놓고 불편한 사용법, 불가능에 가까운 유지보수성을 감수하는 것이 일반 기업들입니다. MS가 상대적 소수인 개발자들도 다 유혹하지 못하고 있는 판에, 일반 기업들을 과연 확 끌어당겨서 닷넷 대세론을 일반에 퍼뜨릴 수 있을까요? 만약 그런 것이 잘 통했다면 MS가 업그레이드율이 떨어지는 것을 막아보려고 온갖 새로운 라이선싱 방식들을 개발해가며 기업들을 유혹할 필요도 없었을 것이고, 비스타나 닷넷에 이 정도로 위험한 도박을 걸 필요도 없었을 겁니다.
하지만 C/C++도 자바 못지 않게 큰 시장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고, 여기에는 같은 네이티브 개발툴인 델파이도 포함됩니다. 당장 밥벌이에 별 지장이 없다면 자바쪽으로도 서둘러 이동할 필요는 없습니다. 자바쪽이 상대적으로 일거리가 더 많기는 하지만, 제가 알기로는 고용은 자바쪽이 더 불안하고, 급여 수준을 제외하면 대우도 그다지 좋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그럴 바에야 한우물을 파는 것이 더 낫지 않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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