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론 주정섭님께서 말씀하시는 내용에 대해 제가 모르지 않습니다. 저도 똑같은 일들을 겪었었고 똑같이 열받아 했었죠. 90년대말에서 2000년대 초까지 본사로 여러차례 항의 메일을 보냈었는데, 나중에 그 메일들이 본사에서 제대로 된 프로세스도 거치지 않고 한국 총판사(한국볼랜드, 한국인프라이즈, 엔시즈로 이름이 바뀜)나 2001년에 설립되었던 한국 지사(볼랜드코리아)로 그대로 포워딩되었다는 걸 알았을 때는 정말 지독한 허무함을 느꼈었습니다.
2001년 중반에 제가 여러 요구사항들을 전달하기 위해 볼랜드코리아에 들락거리기 시작했을 때, 제가 본사로 보냈던 메일들과 다른 분들의 메일들이 폴더로 정리되어 있더군요. 그때 제가 만나 얘기를 나누던 담당자가 말했었습니다. "사실 본사에서는 한국 개발자들이 보내는 메일들은 읽어보지도 않아요, 우리한테 포워딩하고 그냥 신경 끊죠." 물론 어느정도 친분을 쌓고 나서야 들을 수 있었던 말이었습니다.
하지만 주정섭님께서 가지고 있는 회의적인 시각을 똑같이 가지고 볼랜드나 코드기어를 바라본다고 해도, 아무리 상황이 좋지 않고 엉망인 상태라도 결국 볼랜드도 장사를 하는 회사입니다. 한국 시장에서 고객 불만에 대해 제대로 처리되지 못한 것이 매출에 영향을 준다는 판단을 하게 되면 볼랜드의 고집스러운 로컬 정책도 바뀌지 않을 수가 없는 겁니다. 주정섭님이나 저처럼 본사에 메일을 보내본 개발자가 얼마나 될까요? 제가 볼랜드코리아에서 본 폴더의 두께는, 생각보다 훨씬 얇았습니다. 다시 생각해보면, 최악의 경우 오직 저와 주정섭님 뿐이었을 수도 있습니다.
또 설사 본사의 정책은 바뀌지 않는다고 해도, 사실 더 중요한 것은 본사가 한국 시장에 얼마나 신경을 쓰느냐 마느냐가 아니라, 한국 시장을 맡고 있는 한국 지사나 총판사가 고가 정책을 포기하게 만들면 문제가 없는 것이므로, 굳이 본사까지 메일을 보내는 수고를 들이기보다는 그 시간에 한국 지사와 총판사에 항의하는 개발자가 충분히 많았다면 가능했다고 생각합니다. 90년대 한국볼랜드 시절이든 2000년대로 넘어와서 볼랜드코리아로 넘어와서든, 한국에서 델파이나 C++빌더의 연간 판매 카피수는 그리 많지 않습니다. 10카피 단위가 넘어가면 중요하게 되고, 30카피 정도가 되면 신경을 쓰지 않을 수 없는 양입니다.
그런데 개발툴을 구입하려는 대부분의 개발자들은, 불만을 제기하기보다는, 어차피 같은 총판사 아래에 있어서 똑같은 가격 정책을 가지고 있는 리셀러 여러군데를 찾아서 그 안에서 비교견적을 시도하는 쉬운(!) 길로 갑니다. 같은 총판사 아래에 있는 리셀러들 사이에 비교 견적은 전혀 의미가 없습니다. 그게 모두 총판사로 보고됩니다. 총판사 입장에서는 자사의 관리 아래에 있는 리셀러들 사이에 가격 경쟁을 허용하지 않는 것이 당연하기 때문에 실제로 가격이 내려가는 효과도 없고 볼랜드코리아나 총판사에 아무런 의사도 전달되지 않습니다.
저는 델파이와 C++빌더의 가격을 조금씩이라도 떨어뜨리기 위해 볼랜드코리아, 총판사, 리셀러들을 오가면서 별의 별 당근과 채찍을 다 휘둘렀는데, 어떤 일들을 했는지 공개적으로 말씀드릴 수는 없지만 효과가 없지는 않았습니다. 그중 가장 중요한 것은, 200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델파이와 C++빌더를 도대체 얼마에 구입하는 것이 적정한 가격인지 알 방법이 없었습니다만 적어도 지금은 엔터프라이즈 기준으로 350만원 이하로 하향 평준화가 되었습니다. 예전에는 정가인 580만원에 구입하는 사람도 종종 있었죠. (지금은 델파이의 정가가 500만원으로 떨어졌습니다)
1년 전쯤에 델파이/C++빌더의 달러 가격이 3000달러 선에서 2500달러 선으로 떨어졌으므로 지금쯤에는 한국 시장의 가격이 더 떨어져 있어야 했는데, 지금은 330선까지 구입할 수 있는 것으로 보이지만 역시 충분히 인하된 것이 아닙니다. 물론 가격 면에서 제 궁극적인 목표는 한국 시장에서의 정가(list price)를 달러 가격까지 끌어내리는 것입니다. 하지만 한국 시장이 미국이나 일본 시장보다 턱도 없이 적은 지금의 현실에서는 그 정도까지는 좀 무리라는 것을 인정하고, 적어도 정가가 아닌 일반적인 판매가는 달러 정가 정도로 낮추어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2003년 정도부터 이런 단기 목표가 거의 이루어졌다 싶었었는데, 달러 정가와 달러 환율이 내려가는 바람에 다시 격차가 벌어져버렸습니다.
가격 측면 외에도 물론 여러가지 나아졌거나 적어도 일시적으로나마 개선되었던 부분들도 있습니다. 단 한번이지만 델파이와 C++빌더의 지방 대학 순회 로드쇼도 했었고 학생용 개발툴이라는 판매 정책을 만들어내기도 했습니다(지금은 없어졌습니다만). 결국 성공에까지는 이르지 못했습니다만 델파이나 C++빌더의 헬프 번역 건도 꾸준히 밀어붙이고 있는데, 몇번은 이루어질 뻔도 했습니다.
제가 해온 일이 있었고, 또 그 결과로 조금씩이나마 상황이 나아지는 것을 저는 봐왔기 때문에, 주정섭님이 믿는다 안믿는다 어떤 말씀을 하셔도 제 믿음엔 흔들림이 없습니다. 단 한 사람이라도 누군가 노력하는 사람이 있으면 상황은 적든 많든 조금이라도 나아집니다. 그리고 어차피 안돼, 라고 회의하고 포기하는 사람이 많아지면 많아질 수록 상황은 악화됩니다. 간단한 원리죠. 아무도 입을 열지 않고 가만히 놔두면 상황은 점점 더 나빠집니다.
앞에서 말씀드렸다시피 주정섭님의 관점을 잘 이해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바라보는 관점을 조금 바꾸시면, 오히려 아주 소수이지만 지금까지 계속 외치는 사람이 있었기 때문에 이정도라도 유지가 되고 있었을 수도 있고, 그런 관점에서 생각해보시면 그런 소수가 조금이라도 더 많아진다면 상황은 더 나아질 거라는 생각을 하실 수 있으실 겁니다.
주정섭 님이 쓰신 글 :
: 참으로 희안하게도, 잘못된 것도 오랫동안 습관으로 굳어져버리면 더이상 잘못된 것이 아니게 된다. 예를 들어, 옛날에는 인종적 차별이나 신분 차별이 아주 오랫동안 당연한 것으로 사람들이 믿었었다. 현대에도 이런 잘못된 관행들은 여전히 많이 남아 있다. 그중 하나가, 자본주의의 단점인 돈 많은 자가 바로 정의며 힘이다란 논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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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파는자의 권리만 강할 뿐, 구매자의 권리는 제한된다. 이는 파는자는 기업이며, .기업은 대부분의 경우 구매자보다 자본적으로 우월한 위치에 있기 때문에 그러하다. 사실 소프트 라이센스를 보면 상식적으로 웃기는 항목들이 한두가지가 아니다. 그런데도 그런 잘못된 판매 관행이 오랫동안 유지되면서 많은 사람들이 그런 판매 방식이 옳은 것이라고 세뇌된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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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떤 제품을 어떤 지역에 팔고 말고는 파는자의 당연한 권리라고 치자. 냉정히 따지면 판매 지역을 제한하는 것은 사실 옳지 않다. 그래도 파는자의 당연한 권리라고 인정해 주자. 그러나, 어떤 지역에는 100원에 어떤 지역에는 200원에 판다는 것은 분명히 뭔가 잘못된 것이다. 박지훈씨도 자신의 글에서 이것은 분명히 잘못된 경우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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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러나, 지난번의 박지훈씨의 글중에서, 다음 내용에는 도저히 나는 동의할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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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격이 너무 턱도 없이 비싸니까 좀 낮추라고 떠들어대는 사람이 20명만 더 있었더라도 지금쯤 달러 가격에 국내에서 구입할 수 있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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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 생각에는 예전에 20명이 아니라 100명이 떠든다 한들, 과거 볼랜드의 델파이 판매 정책이 바뀌지 않았을 것이다. 실제로 과거에 많은 델파이 개발자들이 볼랜드의 불합리한 판매정책에 불만을 토로했었다. 예전에 나 역시 다우에 전화 걸어서 델파이를 초바가지 가격으로 파는 이유가 대체 뭐냐고 따진 적이 있었다. 아주 무성의한(?) 다우측 답변에 매우 열받아서, 미국 볼랜드의 판매 담당자에게 전화를 걸어서 직접 따지려 했으나, 영어 회화 실력이 무지 딸린 나로서는, 메일로 질의를 했다. 그 내용은 오래되어서 기억이 나지 않지만 대략 다음 내용이 핵심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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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왜 내가 한국에 사는 이유만으로 델파이를 이리 비싸게 사야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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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상당히 열받아서 짧디 짧은 영어 작문 실력을 총동원하여 장문의 메일을 보냈는데, 볼랜드 판매 담당자의 회신 메일은 달랑 두줄인가 그랬다. 그 내용인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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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각 국가의 지사 판매 정책에 대해서 볼랜드 본사는 왈가왈부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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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으로 어이가 없었다. 대 볼랜드의 판매 정책이 이리도 단순 치졸 엉망이란 말인가? 지금도 의아한 점이, 왜 과거 볼랜드는 다운로드 방식의 판매를 하지 않았을까 하는 것이다. 델파이 매뉴얼도 PDF 파일로 배포되기 때문에, 인터넷에서 다운로드 형식으로 델파이를 판매하면 매우 저렴한 가격으로 델파이를 보급화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볼랜드는 아직도 이 판매 방식을 취하지 않고, 미국과 캐나다만 본사 직접 판매, 그 이외의 나라는 지역 지사 판매 방식을 취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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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심지어 현재의 코드기어도 아직도 이 방식을 고수하고 있다. 왜 볼랜드는 구매자와 직배 방식으로 판매 방식을 채택하지 않고 지사 판매 방식을 고수하는 것일까? 미국보다 후진국인 한국에 살기에, 델파이를 미국민들보다 싸게 사게 해달라고 부탁하고 싶지는 않다. 하지만 제발 미국민과 같은 값에라도 델파이를 사게 좀 해달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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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과거에도 볼랜드의 판매 정책을 다양하게 해달라는 델파이 개발자들의 요구는 무지 많았었다. 그러나 볼랜드는 오랫동안 단일 판매 방식만을 지독하게도 고수했었다. 예를 들어 델파이는 사이트 라이센스가 없으며, 여전히 사용자 수만큼 따로 구입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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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과거 볼랜드의 무성의한 마케팅 정책과 개발자 지원 부족은 많은 개발자들의 지탄을 받은 바 있다. 그러나, 볼랜드는 한동안 오랫동안 모르쇠로 일관하다가, 최근 그 모르쇠의 해결책(?)으로 제시한 것이 코드기어 분사일 뿐이란 것이다. 나는 이것이 불만이다. 코드기어는 실수(Real Number)가 아니라 아직은 미지수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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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렇다! 코드기어는 볼랜드와 다를 것이다라고 좋게 생각하자. 이쁘게 봐주자. 그렇다손 쳐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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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델파이를 사용하지만, 볼랜드나 코드기어에 맹목적으로 충성할 마음은 전혀 없다. 예전에 볼랜드에 무지 실망했듯이, 다시 코드기어에 대해서 실망하고 싶지도 않다. 델파이가 현존하는 윈도우 개발툴 중에서 가장 최선의 툴 위치를 유지하는 한 계속 나는 사용할 것이다. 그러나, 후일 델파이보다 더 생산성이 뛰어난 다른 개발 툴이 나온다면, 그 개발툴의 선택에 주저함이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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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가 시샵을 주종언어로 바꾸지 않는 이유는, 시샵의 언어 구조는 매우 마음에 들지만, 내가 주로 만드는 프로그램 분야에서 아직은 델파이보다 못한 점이 너무 많다고 보기 때문일 뿐이다. 아무리 생각해도 VCL은 매우 오래전에 만든 라이브러리임에도 불구하고 너무 잘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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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병규님, 나현호님, 조무영님 그리고 몇 몇 분들이
언제나 많은 어필을 했었고 노력들 하셨지만,
달라진 것은 거의 없다고 봅니다.
그나마,
몇 몇 소소하고 미비하고 보이지 않는 진전이 있었을 지는 모르겠지만..
소비자가 뭉치지 못하고 무서워보이지 않으면,
그 어떤 기업도 성실할 리 없습니다.
코드기어는 어떨지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일단은 희망을 가져봅니다.
다만,
단순히 지켜보기만 하면서 그러한 정책들이 바뀌기를 바라지 말고
적극적인 의사표시가 확실히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어떻게 될지 모르지만,
몇 몇 저도 들은 이야기로는
이전과 다른 일들이 벌어질 것으로 기대하고 있습니다.
일단 제대로 시도라도 하고 난뒤에 포기했으면 합니다.
그리고,
이제는 개별적인 불만표시로 끝나지 않았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