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달쯤 전에 사무실 PC를 바꾸면서 오랫동안 사용하던 윈도우 2000 대신 XP를 깔았습니다. 그렇다고 제가 이전에 XP를 전혀 안썼던 것은 아니고, 집사람의 노트북과 같은 집에 키우고?(?) 있는 여동생의 노트북도 XP가 깔려있고, 저희팀 직원들 중 일부가 XP를 깔고 쓰고 있어서 XP 자체에는 꽤 익숙합니다.
이번에 제가 XP를 깐 이유는 딱 두가지입니다. 첫번째는 부팅속도가 많이 빨라질 거라는 기대감, 또 한가지는 2000에 비해 패치 갯수가 적은 만큼 좀 더 안정적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 때문이었습니다. 그런데 한달쯤 써서 이제 제 작업장이자 놀이터로서의 XP에 충분히 익숙해진 지금, 돌아보면 너무 과한 기대였다는 결론이군요.
일단 XP의 부팅 속도가, 제가 예전에 기억하던 그 속도는 절대 아니군요. 2000에서처럼, 패치가 계속되면서 체감적으로는 가장 많이 영향을 받은 것이 부팅속도가 아닌가 할 정도네요. 제가 기억하던 그 빠른 부팅 속도는, 패치가 거의 안되어 있던 초기버전의 XP에만 해당되었던 것 같습니다. 이전의 시스템에 비해 절반보다는 시간이 더 걸리는 거 같은데요. 이런 정도라면 부팅 속도의 장점은 별로 대단치 않다고 생각됩니다.
이전의 시스템은 펜티엄D 2.4기가 시퓨에 1기가 메모리, 일반 하드디스크였고, 현재의 새 시스템은 코어2듀오 E6600에 메모리 2기가, 하드디스크는 최고의 속도를 내기 위해 RAID 0 스트라이프로 세팅했습니다. 그럼에도 부팅 속도는 이전 시스템에 비해 그다지 '앗! 빠르다!' 할 만큼 빠르지 않습니다. 지렁이 기어가는 갯수 어쩌구 하면서 XP의 부팅 속도를 더 올리는 방법들이 도는 모양이던데, 저는 SE가 아니므로 부팅 시간을 줄이기 위해 그런 팁들을 찾아보는 시간을 들일 정신은 없습니다.
게다가 저는 작업 환경을 엄청나게 어질러놓는 편이라서, 두어개의 개발툴 인스턴스, 10여개의 웹브라우저 창, 대여섯개의 SQL 쿼리 창, 서너개의 탐색기 창을 열어놓고 작업을 하기 때문에, 퇴근 시간에 거의 대부분 이 많은 작업 꺼리들을 다 정리하지 못하기 때문에 그냥 켜놓고 잠궈놓고 퇴근하는 게 보통입니다. 그러니 부팅시간이 절반 정도로 줄어든 건 그다지 메리트가 없는 거 같습니다. 그렇다고 가전제품 전원 스위치를 올리는 것만큼 순간적인 속도를 원하는 것은 아니고, 적어도 예전의 XP 초기버전의 부팅 속도라면 확실히 메리트가 있겠습니다만, 이 화려한 스펙의 PC에서 이정도의 부팅 속도를 메리트로 받아들이기엔 좀 무리가 많네요.
더 심각한 것은... 패치 갯수가 적으니 시스템이 안정적일 거라는 기대감이 완전히 오산이었다는 겁니다. 2000에서도 어느 순간에 갑자기 IE가 죽는 증상으로 심각하게 짜증을 냈었는데, XP에서는 IE가 죽는 빈도가 확실히 더 잦습니다. 어떻게 된 게, 같은 IE 6인데도 같은 페이지를 여는 데 메모리도 더 많이 먹는 걸로 보입니다. 메모리 리크도 2000에서보다 더 심각합니다. 열개 정도의 페이지를 열었다가 닫으면 150메가 정도의 메모리를 잡아먹고 있군요. 그래도, IE의 경우에는, 하도 잘 죽어서 IE로 웹브라우징을 하다가 중요한 페이지가 나오면 아예 비교도 안되게 안정적인 파이어폭스를 열어서 링크를 그리로 옮겨놓으면 IE가 죽어도 파이어폭스 창으로 볼 수 있어서 대안이라도 있었습니다.
작년부터는 아예 기본 브라우저를 파이어폭스로 바꿔버렸습니다. 정말 속편하더군요. 물론 이건, 지금도 파이어폭스만 쓰면 되니까 XP라고 해서 특별히 달라지는 건 아니지만, 아시다시피 우리나라 웹페이지들 중 상당수가 IE에서만 제대로 보이는 비표준 어엉터리 HTML을 처발라서 만들어놓은 게 많다보니 그리 쉬운 선택이 아니지요.
그런데, 2000에서는 거의 말썽을 부리지 않던 탐색기까지 확확 죽어대니 이건 참 대안도 없고 짜증이 마구 치밀더군요. 저는 탐색기를 작업 도구로 많이 활용하는 편이라 이 글을 쓰는 지금도 세개의 탐색기 창이 떠있고, 각각 중요한 작업 영역에서 제가 기억해둬야 할 뭔가 의미있는 정보(날짜별 정렬 순서라든지 검색 결과라든지 등등)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거이 퍽퍽 날아가버리면 기억력이 아주 떨어지는 저로선 짜증이 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PC에 띄워놓은 창들 자체가 제 기억 조각들을 이어주는, 전체적으로는 제 기억력의 일부이기 때문에, 날아가면 상당한 시간이 추가로 들거든요.
이미 알고 있었던 거지만, XP가 기본적으로 메모리를 더 많이 먹는 문제는 참 할 말이 없습니다. 램 1기가일 때 습관적으로 띄워놓던 여러 툴들, IE 창들, 탐색기들, 그전에는 기껏해야 700~800메가 정도 차지했습니다. 그런데 이런 환경을 지금 똑같이 띄우면 예사로 1기가가 넘어가는군요. 지금도 1.3기가 정도 먹고 있습니다. 또 탐색기에서 파일을 지우려고 시도했을 때, 그 파일이 사용중이면 바로 에러가 뜨지 않고 몇초 정도 기다려야 에러 창이 뜨는 것 같은 사소한 문제도 짜증이 종종 납니다. 로직에 한참 전념하고 있을 때 이렇게 지연된 에러 메시지가 뜨면 순간적으로 체인이 끊어집니다.
얼마전에 노트북을 샀는데(바이오 SZ), 기본 OS로 비스타가 깔려있었습니다. 이미 구입 가격에 라이선스가 포함된 것이고, 또 향후에는 비스타에서 테스트할 일도 있기 때문에 원래 깔린 넘은 밀어버리고 파티션을 나눠서 두번째 파티션에 비스타를 그대로 다시 깔았습니다. 그래서 좀 써봤죠. XP는 정말 양반이더군요. 개발 플랫폼으로서는 정말 쓸 수 없는 정도의 수준이었습니다. 물론 컴맹 수준의 사용자들에게는 그런 초강력 보안조치들이 필요할 수 있겠지만, PC 환경에 날고 기는 파워유저에게는 완전히 수갑채우고 족쇄채운 정도랄까요. 비스타가 제게 유일하게 어필했던 그 화려한 UI는, 사실 작업 생산성에 아무런 관계가 없을 뿐 아니라 더 복잡해진 절차로 인해 생산성을 떨어뜨리기까지 합니다. 저는 화려한 UI에서 하루 종일 노가다를 하기보다는, 단순무식한 UI에서 반나절에 끝내고 나머지 반나절은 놀고 싶습니다.
윈도우 2000의 안정성과 성능이 충분했는데도 불구하고, 또 XP의 초기 평가가 형편없었는데도 불구하고, 오히려 덜떨어진 XP가 2000을 대체하게 된 것은, MS가 2000을 시장에서 줄여가면서 XP 위주로 강력하게 마케팅을 한 영향이 절대적일 겁니다. 어쩌겠습니까? 시장에서 윈도우 2000을 팔지 않으면, 저희같이 기업용 라이선스로 대량구매하는 기업 환경이 아닌 한 새 시스템을 구입했을 때 시장에서 당장 구할 수 있는 XP를 쓰는 수밖에 없습니다. (대량 라이선스를 쓰는 기업에서는 얼마든지 구버전 OS를 쓰는 것이 가능하고, 98에서 보안 지원을 아예 끊어버리는 특단의 조치를 취하지 않는 한 구버전 OS를 쓰는 문제에 있어서는 훨 자유롭습니다)
똑같은 원리로, 지금 비스타에 대한 부정적인 평가가 아무리 많다해도 언젠가는 비스타가 XP를 완전히 대체하게 됩니다. 운명적인 거지요. 그리고 이것이 독점의 근본적인 폐해입니다. 리눅스로 가지 않는 한, 새로 내놓은 제품이 아무리 싫어도 결국은 쓰게 되는 겁니다. 시간의 문제일 뿐이지요. 저도 그 절대다수 중의 하나가 될 거 같습니다. 하지만 당장 저는 이넘의 XP를 밀고 다시 윈도우 2000을 깔아야겠습니다. 그 먼 미래에는 어떻게 되더라도, 당장 수시로 개발 작업의 리듬을 사정없이 끊어대는 이 윈도우 XP라는 OS에는 더 참을 여력이 없네요. 제 개발 습관이 너무 구질구질해서 더 그렇기는 하겠습니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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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프님처럼 기억의 고리유지를 위해 비슷하게 사용하는데요,
탐색기 3~4개 또는 그이상, 작업관리자, FF의 많은 탭들, 3~4개의 쿼리 분석기, 1~2개의 엔터프라이즈 관리자, 2~3개의 Delphi를 띄어 놓고 작업하는 편입니다.
부팅은 1주일에 2~3번 하는 편입니다.
개인적으로는 2003은 아주 안정적이라는 느낌이 들었는데요, 동일 사양에서 2000Server보다 가볍다는 느낌을 가지고 사용했었습니다.
기회가 되신다면 2003사용을 고려해 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