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욜밤에 처가집에 데려다놓은 애기를 데리러 집사람과 성남에 가던 길이었습니다.
성남 외곽 순환도로를 타고 은행동 진입로로 들어가고 있었는데, 그 길은 언제나 양쪽 두줄씩으로
불법주차가 엄청난 곳이랍니다. 게다가 차 한대도 겨우 빠져나가는 길로 마을버스까지 다니니, 한번
잘못 걸리면 꼼짝못하고 몇십분씩 서있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날도 딱 거기서 걸렸습니다. 마을버스 두대가 연달아 올라오는데 길을 완전히 막아버린 겁니다.
미리부터 바짝 접근하지 않고 몇십미터 정도 여유를 띄우고 뒤에 서있었는데도 버스가 못지나가는
겁니다. 버스기사가 내려서 좀 빼달라고 하면서 뒤에서 수신호를 하더군요. 오라이~ 오라이~
너무 좁아서 사이드미러를 접고 수신호만 믿고 후진을 한 것이 화근이었습니다.
꽝~ 하더군요. 바로 뒤에 서있던 영업택시를 받은 겁니다. 버스기사는 머뭇머뭇 미안한 표정을
한두번 짓더니 버스몰고 쌱~ 사라지고, 택시 기사와 저희 내외의 한판 대결이 벌어졌습니다.
(아, 물론 과실이야 저한테 있으니까 제가 죄없다고 우겼다는 건 아닙니다)
내려서 뒤로 가 보니, 저희 차 뒤 범퍼 오른쪽 부분이 택시의 왼쪽 앞 범퍼와 마주쳐서 양쪽 범퍼가
약간씩 눌려있더군요. 차를 빼보니 양쪽 차 모두 접촉으로 인해 약간 까만 자국이 묻은 거 외에는
별 이상이 없었습니다. 물론 택시 기사의 주장은 다르겠지요?
택시는 벌써 반 똥차인 듯 여기저기 우그러진 데를 편 자국이 있고 범퍼 주변에만도 척 보기에도
찌그러진 곳을 당겨서 편 곳이 한곳, 제가 받은 바로 근처에는 받아서 페인트가 1cm 가량 떨어져
나간 곳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기사는 범퍼를 발로 밟아누르면서 범퍼가 내려앉았느니 헤드라이트가 밀렸느니 하면서 우기는
겁니다. 헤드라이트는 제가 받은 곳 반대쪽에도 똑같이 밀려있고 범퍼가 내려앉은 것은 펜더가 우그러질
정도로 심하게 받은 이전의 접촉사고로 내려앉은 것이 틀림없어보이는데 계속 우기더군요.
길게 싸우기 싫어서 바로 보험회사에 전화해서 접수했습니다. 보험료에서 상당히 손해볼 것이 뻔하지만
괘씸한 기사에게 회사택시인지라 기사 호주머니에 들어갈 것이 뻔한 돈을 쥐어주기도 싫었고
더 붙잡고 싸우고 싶지도 않았습니다. 애기 데리구 빨랑 집에 가고싶은 생각밖에는요.
보험사에 접수한 번호를 기사에게 알려주고 돌아서려니, 막무가내로 안된다는 겁니다.
보험 접수번호를 알려줘도 들은체도 안하고, 전화를 띡띡 눌러대더니 경찰에 신고를 하네요.
도대체 왜 그러냐고 물어도 대답도 제대로 안하고 빙빙 둘러대더니 한 십분만에 한다는 얘기가,
목이 아프다나요. 기가 막혔습니다만(동승했던 손님은 벨트도 안매고 있었는데도 집에 가버린 지가
오래였습니다) 길게 싸우기 싫은 마음에, 그럼 좋다, 것두 보험에 접수해주마, 그래도 막무가냅니다.
앞에서 썼다시피 차가 꽉 막혀있어서 경찰도 빨리 오질 못했습니다.
이쯤되면 뻔한 거 아닙니까. 호주머니에 좀 챙겨넣을 현찰을 바라는 겁니다.
보험처리해봤자 회사차 수리하는 데 쓰니 자기한테는 좋을 거 하나 없으니까요.
쩝... 돈을 바라더라도, 아예 나쁜넘이더라도 첨부터 깔끔하게 얘기가 되었더라면 몇만원 정도
쥐어주고 말았을 겁니다. (한 10만원까지는?) 그런데 좀 심하다싶더군요. 뒤통수에서 따끈한 김이
오르고 있는 것이 느껴지는 것이... 아 임프 열받았습니다. 보험처리해주면 끝이지 어쩌라고!
열받은 김에 소리까지 지르면서 경찰이 올때까지 끝까지 버팅겼습니다.
거의 30분만에 순찰차가 도착했습니다. 경찰이 다짜고짜 음주측정을 하자고 하더군요.
알고보니, 택시기사가 제 입에서 술냄새가 난다고 신고를 했답니다. 아주 하이바가 돌더군요.
술을 입에 대본지가 3주가 넘었습니다. 이거 완전히 벗겨먹자는 거 아닙니까.
아마 반쯤 이성을 잃었던 거 같습니다. 그자리에서 음주측정 하자고 달려들었더니 기사가 '그게 아니고..'
하면서 슬슬 물러서더군요. 어쨌든 그래서 경찰서까지 갔습니다. 사건접수가 되었으니까요.
성남 남부서던가? 인솔해온 경찰들이 자다 일어난 교통사고 전담자에게 인계하고 사라지고 나서,
차 색깔이나 알아볼까 싶은 어두운 볼펜만한 후레시로 바깥에 세워둔 사고차 두대를 살펴보더군요.
경찰서에서도 인계받은 졸린 경찰이 음주측정 얘기를 하더군요. 열이 뻗쳐서 하자고 그랬지요.
제발 좀 하자고 경찰한테 달려드니까 택시기사가 하지말자고 애원조로 나오더군요. 이거 뭐야.
기사와 저 둘이서 진술서를 한장씩 쓰고서...(그 기사, 일부러 시간을 끄는 것인지 아니면 잘 몰라서인지
진술서 한장 쓰는데 40분 가까이 걸리더군요) 결국 보험처리하는 걸로 얘기를 마치고 나왔습니다.
접촉사고가 난 시간으로부터 3시간 정도나 흘러있더군요.
담날 택시 회사에서 전화가 왔더군요. 보상 때문이죠. 보험처리한다고 사고 직후부터 얘기했는데
사람 붙잡고 열받게 해놓고 어쩌라고! 영업전무란 사람이 제게 거꾸로 묻더군요. 아니 보험처리한다고
했는데 기사가 왜 붙잡고 그랬죠? 아니 그걸 내가 어떻게 아냐고! 당신네 직원이니까 당신이 물어볼
일이지!
토요일 내내 열이 식질 않아서 씩씩댔습니다. 가해자라 어쩔수 없긴 하지만 기분같아서는 당근
보험처리 같은 것도 해주고 싶지 않았습니다. 택시기사들 사이에서 사고나면 관행적으로 그러는
거야 여러차례 들어서 알지만 해도 너무한 거 아니냐구요. 도대체 음주운전이 뭐야.
첨부터 나쁜놈이라고 생각했다면 그냥 쉽게 해결하려구 몇만원집어줬겠지만, 택시 경력 몇년
안되어보이는 어리버리한 얼굴로 동료들에게 수시로 전화까지 해가면서 코치를 받더군요.
세게 나오면 경찰에 신고해버려라, 술냄새 난다고 해라, 그렇게 코치를 받은 듯.
경찰서에서는 계속 핸드폰을 손에 꼭 쥐고 화장실가겠다고 우기는 것을 경찰이 안된다고 하니까
안절부절하더라구요.
그렇게.. 원래는 나쁘지 않은, 순진해보이는 사람이 남들에게 줏어들은 얘기로 나쁜 짓을 하는 것을
보니까 더욱 열이 나더군요. 평범한 시민이라고 다 평범하게 당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덕분에 한밤에 몇시간이나 열내면서 싸우고 또 보험료에서도 손해가 막심하겠지만...
후회는 별루 되지 않는군요. 만만한 지렁이도 지나치게 밟으면 벌떡 일어나서 사람 쥐어팬단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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