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의 천재 조각가 로댕의 말들을 담은것입니다..
인터넷에서 퍼왓습니다..
그럼...
로댕 어록
프랑스의 조각가.
웅대한 청동상과 대리석상으로 유명하며, 조각사에서 가장 뛰어난 초상 조각가로 평가된다. 당시 파리에 세워질 장식미술관에 놓기 위해 1880년에 의뢰받아 제작한 〈지옥문 La Porte de l'Enfer〉은 미완성인 채 남겨졌지만, 그 중에는 그의 유명한 역작인 〈생각하는 사람 Le Penseur〉(1880)·〈입맞춤 Le Baiser〉(1886)이 들어 있다. 초상 조각들로는 빅토르 위고와 오노레 드 발자크의 기념상들이 있다.
[임성삼의 주; 우리 도서관 옆에 있는 <생각하는 사람> 동상을 자세히 보자.]
초기
가난한 집에서 태어난 로댕은 13세에 미술학교에 들어가 드로잉과 모형제작을 배웠다. 17세 이후 "에콜 데 보자르"[임주(任註); 우리말로 직역하면 "미술학교"이나 프랑스에서 가장 유명한 미술대학이다.] 입학시험에 3차례나 떨어지자, 그 다음해(1858) 석조 장식일에 종사하기로 결심했다.
[임성삼의 주(註); 학교의 시험 제도를 말할 때 자주 인용되는 사실이다. 37 세에 해군 장관이 된 처칠이 육군 사관학교를 떨어졌던 것과 함께...]
1862년 누이인 마리의 죽음에 충격을 받아 수도사가 될 생각까지 했지만, 1864년 재봉사인 로즈 뵈레를 만나게 되면서 결국 그녀와 일생을 같이하게 되었다. 그러나 정식 결혼은 1917년 2월 그녀가 죽기 몇 주 전에야 이루어졌다.
로댕은 조각가 A.E. 카리에벨뢰즈 밑에서 일하며 1864년 처음으로 살롱 전에 〈코가 이그러진 남자 L'Homme au nez casse〉를 출품했으나 거절당했다.[임주(任註); 낙선(落選)한 것임] 초기 작품으로는 뵈레를 모델로 조각한 여러 점의 습작도 있다. 1871년 카리에벨뢰즈와 함께 브뤼셀에 가서 공공기념물을 장식하는 일을 맡았으나 카리에벨뢰즈에게 해고당했다. 얼마 후 청동장식물 만드는 일자리를 다시 찾았고, 로즈 뵈레도 브뤼셀로 와서 그와 함께 살았다.
1875년 35세가 되도록 장식일에만 쫓겨 독자적 표현양식을 개발하지 못한 그는 이탈리아(제노바·피렌체·로마·나폴리·베네치아) 방문을 계기로 비범한 재능을 발휘하기 시작했다. 특히 미켈란젤로와 도나텔로에게서 감명을 받고 브뤼셀로 되돌아온 그는 지금까지 자신이 경험한 아카데미즘에서 벗어난 독창적인 작품을 만들기 시작했다. 그 첫 작품이 바로, 다시 태어나려는 활력을 정복당한 고통을 표현한 청동상 〈정복당한 자 Le Vaincu〉이다. 이 작품은 처음에 브뤼셀의 미술계에서, 그리고 1877년 파리 살롱 전에 〈청동시대 L'Age d'Airain〉라는 제목으로 전시되면서 커다란 파문을 일으켰다. 이 작품은 당대의 다른 조각상들과는 대조적으로 매우 사실적인 표현 때문에, 살아 있는 사람 몸에 틀을 떠서 만든 것이 아니냐는 비난을 받았다.
1877년 파리로 돌아와, 1879년부터 세브르 자기(瓷器)공장의 공장장이 되어 있는 옛 스승 카리에벨뢰즈의 부탁으로 자기의 도안을 맡았다. 그러면서 런던과 파리에 세워질 기념비 제작에 여러 차례 응모하여 실패했으나, 마침내 파리 시청의 조각상 제작을 의뢰받았다. 한편 〈설교하는 세례자 요한 St. Jean-Baptiste prechant〉(1878)에서 자신의 독창적인 양식을 개척했으며, 1880년 파리와 브뤼셀의 살롱 전에서 이 작품과 〈청동시대〉가 인정을 받으면서 40세의 나이에 조각가로서 명성을 얻기 시작했다.
로댕의 작품과 인간 중에서 - 쥐디드 클라델 기록
p 7
<어떤 사람(크레에르)이 그의 작품을 독창적이라고 칭찬하자 로댕이 대답한다.>
당신은 약간 잘못 생각하시는군요. 독창적이 아니예요.
독창이라는 것은, 보통 일반 사람이 말하는 뜻이지, 위대한 예술에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진정한 재능에 도달하는 인내가 없는 예술가는, 진실을 외면하고, 제목이나 형태 같은 즉흥적인 것, 별난 것을 찾지요. 그것이, 세상 사람들이 말하는 독창이라는 것이지요, 하지만, 그것은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습니다.
[임성삼의 주(註); 진정한 창조는 독창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인내에서 나오는 것이다. 에디슨의 "천재란 1 %의 영감과 99 %의 노력"이라는 개념과 동일하다. 우리도 별난 것을 찾지 말고 그 시간에 인내로 참다운 진리에 다가가려고 노력해야 하지 않을까?]
<예술 강연을 부탁받고>
내 이름을 교수들 속에 넣겠다는 겁니까. 왜요? 나는 아무 것도 안했는데.
"교수"라는 것은 이미 무의미한 말이예요. 가치 없는 말이예요.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들, 자기의 길을 갖지 못한 사람들이 교수로 떠받들리고 싶어하지요.
그뿐 아니라 내가 할 수 있는 최상의 강의는 여기 있습니다.
나의 작품을 보면 되는 거예요!
영리한 젊은이들은 그것을 보고 무엇인가 도움이 되는 것만을 얻을 겁니다.
보아야 해요! 그리고, 일을 해야 합니다.
[임성삼의 주(註); 진정한 예술, 혹은 기술(art)을 원하는 영리한 젊은이들은 잘 된 작품을 보고 묵묵히 일해야 한다.]
p 8
<의견을 물으러 온 젊은 조각가에게>
전번에 한 말 이외에는 더 할 말이 없군요.
공부해요. 찰흙을 주물러요. 발을 만들어요. 손을 만들어요. 그리고, 그것을 가져와 봐요,
그것에 대해서 내가 생각한 대로 말하리다.
그렇지요. 발이나 손 말예요.
실물에서부터 끈기 있게 해요. 공부해요. 잘 가요!
[임성삼의 주(註); 여기에 배우는 모든 방법이 있다.]
<크레에르가 그의 데생을 보고 의견을 말했을 때>
...... 아시다시피, 예술이라는 것은 자연의 연구에 불과하지요. 고대나 고딕(GOTHIC)을 위대하게 한 것은 이 연구입니다. 자연입니다. 모든 것이 거기에 있습니다. 우리들은 아무 것도 발명하지 않습니다. 아무것도 창조하지 않습니다. ......
자기를 아무리 강하다고 믿는다해도, 생애(生涯)의 어느 때에나, 자기의 조각에 불만스러운 부분이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대중은 그것을 모르겠지, 앞으로 잘 하기로 하지, 하는 생각을 하면 못 써요.
[임성삼의 주(註); 사람에게 가장 나쁜 것은 자기와의 타협이다.]
대중이 그것을 모른다 해도, 자기 자신이 알거든요. 곤란을 얼버무리는 버릇이 붙어서, 무성의한 조각에 만족하게 되고, 필경에는 아주 나쁜 조각이 되게 마련입니다. 자기의 양심과 타협하면 안 됩니다. 대수롭지 않은 일이라도 말입니다. 나중에는 아무렇지도 않은 이 일이 전체가 되게 마련입니다.
[임성삼의 주(註); 우리나라의 화가 이중섭은 전시회에서 자기의 작품을 사가는 사람에게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고 한다.
"미안합니다. 이 작품은 아직 모자랍니다. 나중에 제대로 된 작품을 그리게 되면 바꾸어드리겠습니다."
이런 사람의 작품은 나날이 향상한다. 이런 겸손은 절실한 겸손이며, 한 사람을 완성시키는 열쇠이다. 나는 우리 모두가 이런 절대적인 겸손을 가지기를 바란다.]
...... 예술은 더디기를 요구합니다. 사람들의, 특히 젊을 때에는 생각도 못 할 인내를 요구합니다. 터득하는 일도 어렵거니와, 또한 만드는 일도 어렵지요.
[임성삼의 주(註); 적어도 로댕은 잔재주를 부리는 사람이 아니다. 이런 사람은 다른 사람보다 더 멀리, 더 깊이 나아간다.]
요즈음은, 모두들 너무나 빨리 가려고 들어요. 자기라는 것을 알 시간마저도 갖지 않아요.
[임성삼의 주(註); 나이든 사람들이 기원 전 수천 년부터 하던 말이지만, 이 말에 상당한 진실이 있다.]
P 10
일의 진정한 전습(傳習)은 죽었습니다! 아나톨 프랑스가 오늘 아침에 이야기해 주더군요.
"옛날엔, 미술가의 제자는 스승의 집에서 아틀리에 청소도 하고, 그림물감도 갈고, 그리고 또 남의 모델노릇도 하면서, 그림을 시작하기 전에 이태는 보냈지요."
그건 사실입니다. 요즈음은 너무 쉽게 구할 수 있기 때문에, 욕망이 맹렬해지는 시간을 갖지 않습니다.
[임성삼의 주(註); 산 속의 도사나, 절에 가서 배우려면 적어도 삼 년은 물긷고 청소하고 빨래하고 밥하며 지내야 하는 것이 동양의 풍습이었다. 이 기간에 열심히 하려는 욕망이 쌓이고 쌓여 그 후 조그만 것이라도 가르쳐주면 완전히 자기의 것을 만들게 되며, 많은 것을 가르쳐 주어도 지치지 않고 배우게 된다.
지금은 모르나 10여 년 전 독일에서는 박사 과정에 들어가면 3 년 정도는 교수가 아무 것도 지도하지 않았다고 한다. 강의 들으며 도서관에서 책만 읽는 이 기간에 열심히 하려는 욕망이 쌓이는 것이다. 처음부터 많이 가르쳐주기만 하면 배우는 사람이 가르침에 대한 가치를 인식하지 못하고 싫증을 내게 되는 것이 일반적인 경향인 것 같다.]
P 11
[예전 위대한 작가가 나오던 시대에는] 세상 사람들이 예술을 사랑하던 시대에 살았었습니다. 그들은 일반 사람들의 취미 속에 몸을 담그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우리들의 시대에는, 사람들이 예술의 테두리 밖에서 살고 있습니다. 이미 예술은 대중을 위해 있는 것이 아니게 되었습니다.
고대인들은 예술가가 위대해야 하는 분위기를 그 주위에 가지고 있었습니다. 오늘날에는 대중들에게는 위대함을 존중하는 마음이 없습니다. 우리는 결코 대중의 지지를 받고 있지 못해요. 3, 40 년 안으로 끝장이 날 거예요 ...
[임성삼의 주(註); 나의 생각일 뿐이지만 결국 피카소가 미술과 대중의 관계를 끝장 내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 같다. 여기 로댕의 예언대로 3, 40 년 쯤 후에...]
P 12
내가 루우브루 박물관을 나오면서 "나도 역시 고대 예술을 만들어야지"하고 외치며, 보고 온 것을 복제하기 위하여 나의 아틀리에로 돌아간다고 상상하는 사람들이 있어요. 절대로 그런 일은 없습니다.
루우브르 방문, 이것은 나에게 있어서, 좋은 음악을 듣는 한 시간 같은 것입니다. 그것이 나를 격려합니다. 이번에는 내가 일을 해야지 하는 갈망을 줍니다. 또한 나에게 일시적으로 느긋한 취기(醉氣)를 줍니다. 물론, 이 취기는 무시해야 합니다.
일이란 가만히 앉아서, 곰곰 생각해야 하는 것이니까요......
[임성삼의 주(註); 예술가가 아니라도 자주 박물관이나 미술관을 가는 것은 "좋은 음악을 듣는 한 시간"이다. 자주 시도해보기 바란다. 내 개인적인 취향으로는 국립 중앙 박물관이 좋다. 나 같이 평범한 사람은 인터넷의 "국립 현대 미술관"에 있는 여러 그림에서도 충분한 만족감을 느낀다. 여러분도 시도해보기를 권한다.]
P 13
예술이란 것은, 어쩌면 이토록 줄기찬 인내를, 끈덕진 고집을 요구할까요! 일을 안하면 영(零)이예요. ......
[임성삼의 주(註); 이미 언급했으나 에디슨도 "1%의 영감(靈感)과 99%의 땀"이라는 말을 하였다. 재능을 요구한다는 예술과 발명에서조차 가장 중요한 것은 인내이다.]
만약, 서두르거나, 도달하려고 초조해하거나, 노동 그 자체를 목적으로서 생각하지 않거나, 성공 돈 훈장 주문(注文) 따위를 생각하거나 하다가는 끝장입니다! 결코 예술가가 될 수 없습니다. 남의 눈요기를 시키는 물건은 만들 수 있겠지요. 평범한 작품이기 때문에 대중과 그 얄팍한 예지(叡智)에 가깝기 때문이지요. 그러나 결코 진정한 예술가는 될 수 없어요.
[임성삼의 주(註); 옳다.]
P 14
사람은 일할 때에는 언제나 망설이는 법이지요,
결코 자기가 어디를 걷고 있는지 확실히 알 수 있는 것이 아니예요.
진보는 참으로 더디고, 참으로 불확실한 거예요.
이윽고 그것이 갑자기 열립니다. 사람은 앞으로 나갑니다.
하지만 암중모색(暗中摸索)하는 몇 해가 지난 뒤의 일이지요.
빨리 당도하려는 생각을 하거나, 자신을 학대하면 자살하는 결과가 됩니다.
한 방울 한 방울 돌을 파고드는 물처럼, 느리고 조용한 힘을 가져야만 합니다.
그리고 인간의 인내력으로써는, 도착점이 너무나 멀다는 생각을 하지 말아야 합니다.
나이가 들기 전에는 그곳에 갈 수 없습니다.
젊을 때에, 청춘의 활기가 넘칠 때에, 그 일을 생각한다는 것은 괴로운 일이예요.
[임성삼의 주(註); 예술만이 아니고, 연구도 동일한 속성을 가졌다. 어느 면으로는 노자(老子)의 말이 생각난다.]
<그 당시의 예술가 콩스탕탱 뫼니에에 대하여>
뫼니에. 그렇지요. 음. 그도 좋은 그림을, 그러나 예술의 표현으로는 절대적이 아닌 그림을 그린 한 사람이지요. 그리고, 훨씬 나중에, 50 세가 넘어서야 갑자기 조각을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완전히 몸을 내던지고 훌륭한 것을 만들었습니다.
예술은 여러 가지 방법으로 발달합니다. 어떤 사람은 신속하게, 어떤 사람은 완만하게. 그리고 완만이 주는 결과는 신속이 주는 결과와는 다릅니다.
<언젠가>
나는 그것을, 자연 속에서 이렇게 보았기 때문에 이렇게 만들었어요.
<루우브르에서 관람객들을 보고>
나는 군중 속에서 참으로 아름다운 무브망(mouvement)을 봅니다.
[임성삼의 주(註); 무브망은 영어의 movement로 이 책에서는 동세(動勢)라고 번역하였다. 이 말이 조각에서 사용하는 전문어인지는 모르겠으나, 로댕은 큰 의미를 부여하고 있고 자주 사용하고 있다.]
모두가 걷지요. 그들은 절도(節度)가 있고 젊어요. 그 다리, 그 팔은 균형과 유연(柔軟)이 풍부하여 참으로 쉽게 움직여요. 그것은 아름다워요. 그러나, 대개의 사람들은 그것을 마음에 안 둡니다.
[임성삼의 주(註); 언젠가부터 일부 사람들은 많은 사람들 속에 있기를 싫어한다. 벚꽃놀이, 심지어는 박람회에 가서 많은 사람들로 인해 고생하였다고 느끼고 주위 사람들에게(특히 거기에 가지 못한 주위 사람들에게) 불평을 늘어놓는다.
그러나 로댕은 군중을 좋아하였다. 박물관에 구경온 군중까지도. 군중 속에는 동일한 사람이 하나도 없고, 그들은 각자가 모두 다른 모양, 개성을 가지고 있다. 그러므로 아름다울 수밖에 없을 지도 모른다.]
p 17
<방문객에 시달리다가>
이것이 나의 생활입니다. 나는 일을 않고 있어요. 나 자신의 사무 지배인과 다를 게 없어요.
아무 할 일도 없는 사람들은, 나를 찾아와서 방해하는 것을 당연한 일로 알고 있어요. 나를 도와야 할 사람이 나를 못살게 굴어요.
p 20
천재란 별것이 아니라, 본질에 대한 지식이 있고, 그것을 완전한 경지에 도달한 기법으로써 만들어 내는 자를 말하는 것입니다. 본질적인 인간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임성삼의 주(註); 적어도 다른 사람보다 조금 머리회전이 빠른 사람이 천재인 것은 아니다.]
천재란 질서 그 차체입니다. 율도(律度; 법 율, 법도 도), 균형의 능력의 집중입니다. 세상에서는 흔히 나의 조각을 광신도의 제작이라고 말했었지요. 나는 광신자하고는 반대되는 사람입니다. 오히려, 무겁고 온화한 기질을 지니고 있어요. 나는 꿈꾸는 사람이 아니예요. 수학자예요. 나의 조각이 좋은 까닭은 기하학적이기 때문이지요.
[임성삼의 주(註); 천재에 대한 명확한 정의의 한가지라고 생각한다.]
자연! 나는 이제야말로 그것을 찬탄할 수가 있습니다. 그것이 얼마나 완전한가는, 만약 친절한 신이 나를 불러 놓고 고쳐야 할 곳을 묻는대도, 나는, 모두가 좋습니다. 어디에도 손을 대지 마시라고 대답할 작정입니다.
p 21
시골에 있는 나의 집에서, 어린이가 풀밭에서 딩구는 모양이나, 또 나의 개가 뛰어 다니는 꼴을 봅니다. 아! 그 어린이의 아름다운 자세! 건전하고 쾌활하고 자유가 넘치는 그 짐승의 멋진 도약(跳躍)! 그것은 바로 "미(美)" 그것입니다. 그리고 나는 그것을 느낍니다. 나는 그것을 가장 깊이 느끼는 나이가 되었습니다. 나는 정적(靜寂) 속으로, 명정(明淨) 속으로, 커다란 입구에서 들어온 것처럼 들어왔습니다. 나는 조용히 찬탄합니다. 그것을 젊을 때에는 할 수 없는 일입니다. 청춘 시대에는 좀더 열기(熱氣)가 있습니다. 동요(動搖)가 있어서, 볼 시간이 없습니다.
[임성삼의 주(註); 이 조용한 말을 다시 한 번 천천히 읽어보자.]
p 24
대중은 예술가가 나이를 먹고, 그래서 게으른 예술을 만드는 줄로 상상을 해요. 그러나 그와 반대예요. 예술이 워낙 커서, 그들이 그것을 터득을 못 하는 거예요. 예술이 본질을 간직하고 있기 때문이지요. ......
렘브란트는 복잡에서 단순으로 옮았어요. ... 그리고 그가 단순해졌을 때, 즉 뿌리에서부터 위대해졌을 때, 사람들을 그를 굶겨 죽였어요(역주; 렘브란트는 빈곤 속에 63 세로 죽었다.)
<그의 작품의 불완전성을 비난 당한데 대하여>
나는 발견자예요. 나는 자신의 탐구의 결과를 파편 그대로 남에게 내줍니다. 세상 사람들은, 내가 그 결과 속에서 나 스스로 그것에 의한 응용(應用)을 만들어 내지 않는다고 나무랍니다. 그건 일은 나보다 나중 오는 사람이 이어받아 주면 돼요. 나는 나 자신의 시대의 예술가의 예지(叡智)를, 미켈란젤로나 고대인 곁으로 유도했다는 일로 만족해야 해요. 볼타가 전지를 발견했을 때, 그 자신은 그것에 응용의 길을 줄 수 없었어요. 훗날, 그 응용은 과학을 전도(顚倒)시켰지만 말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그의 덕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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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댕전(傳)" 중에서 - 두 번째 작가가 로댕의 말을 적은 것
P 40
아주 어릴 적부터, 내가 기억할 수 있는 한 아주 조그마해서부터, 나는 그림을 그리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천부(天賦)의 재주라는 것도 그것을 가치있게 할 만한 의지(意志)가 없이는 아무 것도 안됩니다. 예술가는 한 방울 한 방울 바위에 파고드는 물 같은 참을성을 가져야 합니다.
p 42
오늘날의 청년 예술가는 아무것도 모릅니다. 옛날 장식이나 도안을 진저리가 나도록 모사합니다. 그것도 지극히 형편없이 흉내내어, 전혀 의미를 잃게 합니다. 옛날 사람들은 그 도안을 자연에서 얻었습니다. 그들은 정원에서, 채소밭에서조차 찾아내었습니다. 양배추의 잎, 클로버, 찔레 따위가 고딕 기둥 위의 소재입니다. 우리가 예술에서 찾아야 할 것은, 사진(寫眞)적 진실이 아니라, 산 진실입니다.
[임성삼의 주(註); 그리스의 파르테논 신전 기둥 윗부분을 장식하고 있는 잎 모양의 장식을 사진으로라도 잘 관찰해보자.]
나는 미문(美文)가가 아니라, 실행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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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라델이 지은 "로댕" 중에서
p 62
과학은 행복을 주는가. 나는 그런 생각이 안든다. ......
옛날에는 직공이 창작하였다. 오늘날 그들[직공]은 제조한다. 옛날에는, 그들은 미술품을 만드는 기쁨에 용약(勇躍)하였었다. 오늘날의 직공은 일터에서 하는 일이 싫어, 태업을 궁리해 내거나 술마시는 일을 유행시키거나 한다.
......
예술만이 행복을 준다. 그리고, 내가 예술이라고 부르는 것은 자연의 연구이다. 해부의 정신을 통한, 자연과의 끊임없는 친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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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드릭 로오톤 편(編)
단편(斷片)
p 80
감정에 종류가 있듯이, 미에도 여러 종류가 있습니다.
P 81
보행(步行)은, 경치의 진상을 찾아 내기 위한 가장 좋은 방법입니다. 자기 마음 내키는 만큼 걸을 수 있고, 자기 마음 내키는 때에 멈춰 설 수 있고, 그리고 모든 것을 보고 즐길 수 있습니다. 자기 집을 나서서, 공장 가까운 곳을, 날마다 2, 3 시간 정도, 여러 가지 경치가 있는 쪽으로 한가로이 걷는 다는 것은 유쾌하지요.
만약 선택해야 한다면, 나에게 가장 울려 오는 것은 봄빛입니다. 그것은 참으로 미묘하게 새롭고, 그리고 가을빛에도 못지 않을 정도의 변화가 있습니다. 게다가, 여름의 희망이 보이니까요.
p 84
<건축 장식가의 조수를 하던 무렵을 추억하며>
나는 무언가 저급(低級)한 일에 종사하는 줄 여기고 있었습니다. 이 생각이 잘못이라는 것을 발견하기까지는 꽤 오래 걸렸습니다.
<"칼레의 시민"이 물의를 일으켰을 때>
예술가란, 보는 사람이라는 말입니다. 눈을 뜬 사람이라는 말입니다. 어쨌든, 그 마음에 물건의 내면의 본질을 존재 사실로서 생각할 수 있는 사람이라는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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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오톤의 "로댕전(傳)" 중에서
p 89
나의 생각으로는, 그리이스가 우리들의 스승입니다.
그들과 같이 조각을 만들 수 있었던 자는 일찍이 없었습니다. 그들은 그 조각의 맥관(脈管) 속에 피가 넘쳐흐르게 할 줄을 알고 있었습니다. 이 근본적인 일에 비한다면, 주제니 무어니 하는 것은 아무것도 아닙니다.
p 90
나는 창조하지 않습니다. 단지 볼 뿐입니다. 만들 수 있다는 것은 보기 때문입니다.
p 93
나는 자신의 생애의 종말에 가까워지고 있습니다마는, 아직도 모델에게는 모델 마음대로 하게 둠으로써 만족하고 있습니다. 나는 결코 어떤 자세를 지시하지 않습니다. 고작해야 내가 찾던 자세를 발견했을 때, 그것을 연장해 달라는 정도입니다. 자연을 강제하는 일 없이 연구하는 습관이 붙었기 때문에, 나는 자연히, 대개 다른 조각가들에게 사용되었던 적이 없는 사람들 중에서 나의 모델을 고르게 되었습니다. 어쩌다가 이 관례를 깨뜨리면, 후회하기 마련입니다. 지시한 대로의 태도, 자세는 우선 부자연합니다. 연구자에게는 무용(無用)하다기보다도 차라리 나쁩니다. 무한과 바꿔진 유한입니다.
나는 항상 찾고 있습니다. 그리고 도저히 다 발견할 시간이 없다고 여겨질이만큼 무한히, 발견되어야 할 것이 남아 있다는 것을 압니다.
p 95
예술가란 보는 사람이라는 말을 거듭하게 됩니다. 그는 눈이 열린 사람이라는 말입니다.
[임성삼의 주(註); 과학자도 마찬가지이다. 진실을 보는 눈을 가져야 한다.]
p 102
<해부학은 예술을 해치지 않느냐는 질문을 받고>
그렇겠지요. 평범한 미술가에게는.
p 103
<제자 나톨프와 헤어질 때>
그럼, 나는 자네에게 나침반을 주었네. 그것을 사용하여, 자연을 스승으로 섬기며 해 나간다면, 자네는 마음대로 키를 잡을 수 있을 걸세.
[임성삼의 주(註); 완벽한 가르침이다.]
p 104
나의 현재 소망은, 그리이스로 가는 일입니다. 진정으로, 나는 이 욕망을 평생 품고 있으면서도, 끝내 아직도 기회를 못 가졌습니다. 나는 그 나라가 무엇을 가지고 있는지 구석구석까지 알고 있습니다. 책과 미술관에 의하여 모든 것을 연구하였습니다. 이제야말로 그것을 눈앞에 볼 준비가 갖추어졌다고 생각합니다.
[임성삼의 주(註); 음악을 공부하겠다고 20 대, 혹은 10 대에 이탈리아로 떠나는 현실과, 모든 것을 연구한 뒤에 이런 말을 하는 사람 중 누가 더 많은 것을 배울지는 분명한 것이다.]
p 106
<고딕 양식의 독창성에 대해>
고딕 양식의 독창성은 예술의 극치는 아닙니다.
그 극치는 힘과 우미(優美)의 융합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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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 그셀 편
p 114
예술가는 "보는" 겁니다. 즉 말하자면, 그의 마음에 통하는 그의 눈이, 자연의 가슴 속을 깊숙이 투시(透視)하는 겁니다.
이 때문에, 예술가는 그저 그의 눈을 믿으면 되는 겁니다.
[임성삼의 주(註); 대부분의 경우 과학자도 그렇다.]
p 121
위대한 예술가는, 한 걸음도 물러서지 않는 그의 공명한 관찰이, 모든 것 속에 숨겨진 의의를 간파합니다.
p 132
나는 항상 근육의 움직임에 의해 내면의 감정을 나타내려고 했습니다.
단편(斷片)
p 151
그 무렵의 예술가들은 '보는'눈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오늘날의 예술가들은 소경입니다. 여기에 모든 차이가 있습니다. 그리이스의 여자들은 아름다웠습니다. 그러나 그 아름다움은 특히 그녀들을 재현한 조각가들의 머리 속에 존재했던 것입니다.
[임성삼의 주(註); 그 당시에 활동을 한 미술가들은 다음과 같다. 마네, 드가, 모네, 고갱, 고흐.
로댕에 의하면 이들은 소경인 셈이다.]
요컨대, 미는 어디에나 있습니다. 우리의 눈앞에 미가 없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눈이 미를 못 보는 것입니다.
p 152
나는 자신의 최선을 다했습니다. 나는 결코 거짓말을 하지 않았습니다. 나는 나와 같은 시대의 사람들에게 아첨을 하지 않았습니다. 내가 만든 흉상은 그것이 매우 성실했다는 사실로 남들을 불쾌하게 만들기가 일쑤였습니다. 나의 흉상은, 모두 확실히 하나의 미점(美點)을 가지고 있습니다. 진실 말입니다. 진실이 그것에 미를 부여하기만 하면 됩니다.
p 154
만약 종교가 존재하지 않았었다면, 나는 그것을 만들어 낼 필요를 느꼈을 것입니다. 진정한 예술가들은, 요컨대 인간 중에서 가장 종교적인 인간입니다.
위대한 예술가는, 그의 영혼에 응답하는 영혼의 소리를 도처에서 듣는 법입니다. 이 이상 종교적인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p 157
오늘날 세상 사람들은 이익밖에는 생각지를 않습니다. 적어도 예술가를 존경한다는 것이, 제조업자나 기술자와 같을 정도로 이익이 있다는 사실을 이 실제 사회가 납득하게 되기를 나는 바랍니다.
p 164
나는 어디까지나 진실에 대하여 마음을 쏟기 때문에, 결코 맵시 있게 조각하거나 소묘하지를 않습니다. 결코! 아시겠지요.
젊은 예술가들에게(유언)
p 174
인내하시오! 영감에 기대하지 마시오. 그런 것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예술가의 자격은, 오직 지혜와 주의와 성실과 의지뿐입니다.
성실한 노동자처럼, 그대들의 일을 하시오.
[임성삼의 주(註); 예술가들도 이런데 공학자들은 말할 것도 없다.]
p 177
세속적인, 또는 정치적인 관계를 맺기 위해서 그대들의 시간을 낭비하지 마시오. 그대들은 그대들의 수 많은 동료가 계략에 의해서 열광을 얻고, 또 재산을 얻는 것을 보게 될 것이오. 그것은 진정한 예술가가 아닙니다. ...
정열을 가지고 그대들의 사명을 사랑하시오. 이보다 더 아름다운 일은 없습니다. 그것은 속물들이 생각하는 것보다도 훨씬 높은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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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스타브 코키오 편(編)
p 189
진리에는 나이가 없다.
p 207
오늘이야말로 봄이다. 먼 데가 보이고, 언덕은 유쾌한 잿빛을 띠고, 나무들에는 꽃이 피고, 공기도 화려해진다.
p 210
젊었을 무렵, 나는 아이들을 아름답다고 생각지 않았었다. 나는 코를 보고, 입술을 보고, 표정을 보았다.
나는 바보였었다. 전체를 보아야 한다.
p 221
봄은 생명을 날라 온다. 생명의 빛이요, 생명처럼 투철(透徹)하다. -- 산다는 것은 이 얼마나 영광이냐!
정신이 지도할 때에 사는 자는 행복하다!
재주는 예지가 아니다. 세목(細目)이 자란 것이다.
p 223
재주는 예지의 배경 위에 있어야 한다. 장식이 건축의 배경 위에 붙듯이.
조각에는 독창성이 필요치 않다. 생명이 필요하다.
기타
p 234
고통이야말로 생활의 교전(敎典)이다.
나는 자신이 본 것을, 자신의 기억과 자신의 정신에다가 느릿느릿 새긴다.
나는 일체의 존재는 미요, 일체의 미는 진(眞)으로 본다. -- 사람은 진실된 것 속에서 선택할 권리가 있다.
나는 노르망디의 수레꾼의 자손이다.
[임성삼의 주(註); 프랑스에서는 노르망디 사람이 고집이 세다고 알려져 있다. 이 자세가 로댕을 만들었다고 생각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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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성삼의 이야기:
과거의 세계적인 천재 30여 명을 분석한 책을 읽은 적이 있다. 그 분석의 결과 천재는 가문의 영향을 받는 것이 아니고, 형제들의 능력과도 관계 없으며, 가난한 것과 어느 정도 부유한 환경에도 영향을 받지 않는다. 부모가 관심을 기울이고 안 기울이는 것과도 관계가 없다. 단지 상당한 수의 천재 중 가문이 좋은 사람은 없었던 것이 특이한 현상이었다. 오히려 로댕과 같이 "나는 수레꾼의 자손이다"라고 선언하고 사는 사람이 인류에 무엇인가 큰 것을 기여할 가능성이 더 크다고 본다. 과거 몇 세기 동안 영국 왕실의 자손 중에서 뛰어난 남자가 나왔다는 말을 들은 적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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