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 “체포 필요성 인정키 어렵다 ”결정
시민단체 “당연 ‥오늘 광화문집회 강행 ”
검찰이 26일 탄핵반대 촛불 시위를 주도한 시민단체 간부 네 사람의 체포영장을 청구했으나 법원이 이를 모두 기각했다. 서울중앙지법 영장전담 이혜광 부장판사는 이날 ‘탄핵무효·부패정치청산 범국민행동’ 최열 공동대표와 박석운 집행위원장, ‘국민의 힘’ 김명렬 공동대표와 장형철 사무국장 등 4명에 대해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 위반 및 일반교통 방해 혐의로 검찰이 청구한 체포영장에 대해 “피의자들이 출석 요구에 응하지 아니할 우려가 있다는 점에 관한 소명이 부족하다”며 “피의자들이 변호인을 통해 제출한 자필진술서에서 위 출석 요구에 응하겠다는 의사를 분명히 하고 있어 체포의 필요성을 인정하기 어렵다”고 밝히고 기각했다.
최 공동대표 등은 이날 오전 변호인을 통해 30일에 출석하겠다는 자필진술서를 제출한 것으로 알려졌다.
대검 공안부(부장 홍경식 검사장)는 이에 앞서 “정부에서 그동안 주최 쪽에 야간 촛불시위가 불법 집회임을 여러 차례 밝히고 자제를 요청했으나, ‘범국민행동’ 쪽이 17대 총선을 눈앞에 둔 27일 또다시 서울 도심에서 대규모 야간 집회를 열기로 함에 따라 집회 주최자 등에 대한 형사처벌이 불가피하다”며 체포영장을 청구했다.
영장 기각 뒤 국민수 대검 공보관은 “당사자들이 30일까지 경찰에 나오겠다는 확약서를 법원에 제출했으니, 그때까지 출석 여부를 지켜본 뒤 체포영장 청구를 다시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검찰은 선거운동 기간에 선거에 영향을 끼치는 집회 개최를 금지한 선거법 103조 규정에 따라 다음달 2일부터는 주간·야간 및 옥내·옥외를 불문하고 탄핵 관련 집회를 엄중히 단속하겠다고 덧붙였다. 안창호 대검 공안기획관은 “선거기간에 열리는 탄핵 찬반 집회는 탄핵소추에 대한 찬성·반대 의사뿐만 아니라 특정 정당이나 후보자들에 대한 지지·반대 의도가 내포돼 있어 선거에 영향을 끼치게 된다”고 설명했다.
법원의 영장 기각에 대해 김기식 범국민행동 공동집행위원장은 “우리가 이미 경찰에 출석할 의사를 밝혔음에도 검찰이 체포영장을 청구한 것이 애초 무리였음이 법원의 영장 기각을 통해 확인됐다”며 “영장 기각 여부와 상관없이 30일 오전 10시 경찰에 자진출두하고, 27일 촛불행사 등 앞으로의 일정도 그대로 추진할 것”이라고 밝혔다.
체포 영장이 함깨 청구된 ‘국민의 힘’ 장형철 사무국장은 “촛불행사는 법으로 재단할 수 없는 일이기 때문에 법원의 결정은 지극히 당연한 것”이라며 “경찰 출석 여부는 변호사와 상의해 결정하겠다”고 말했다.
범국민행동 쪽은 “최근 선관위와 정부, 검찰의 태도와 상관없이 27일 행사를 평화롭게 진행할 것이며, 이미 정해진 27일 이후의 활동계획도 수정 없이 당일 발표하겠다”고 밝혔다. 범국민행동은 27일로 사실상 대규모 촛불집회를 마무리할 계획인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27일 오후 5시 서울 광화문을 비롯한 국내외 50여곳에서 ‘3·27 민주수호 촛불대회-탄핵무효·수구부패정치 심판의 날’ 집회가 열린다. 광화문 집회에서는 대형 천 돌리기 퍼포먼스와 새날을 여는 촛불 밝히기 등 행사가 열리고, 소설가 황석영씨 등이 시민발언을 할 예정이다. 경찰은 이번 행사에 광화문 6만~7만여명 등 전국적으로 10만명 정도가 참여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하석 황준범 전정윤 기자 hgrhs@hani.co.kr
http://www.hani.co.kr/section-003500000/2004/03/003500000200403262023001.html
체포영장 기각 배경 ·영향
자진출석뜻 ·시한여유 무시 '패착'
법원이 탄핵반대 촛불시위 주최자 4명에 대한 체포영장을 모두 기각한 것은 검찰의 청구 자체가 애초부터 무리였다는 사실을 그대로 드러내주고 있다.
◇ 무리한 청구, 예고된 기각=검찰이 지난 25일 갑작스레 체포영장을 청구하도록 경찰에 지시할 때부터 무리수라는 지적이 적지 않았다. 아직 3차 소환일이 다가오지도 않은데다 당사자들이 이미 자진출석 의사를 밝혔기 때문이다.
그동안 검찰과 경찰은 통상 폭력이 수반되지 않은 불법집회 주최자들에 대해서는 세 차례 이상 출석요구서를 보내는 등 최대한 자진출석을 유도해 불필요한 마찰을 줄여 왔다. 그러나 이번에는 검찰이 두 차례 출석 요구에 불응한 최열 ‘범국민행동’ 공동대표 등에게 3차 출석 시한(30일)까지 기다리지 않은 채 곧바로 체포영장을 청구하도록 했다. 특히 범국민행동 쪽은 이미 지난 25일 김기식 집행위원장을 통해 경찰에 “출석 요구를 받은 사람들이 27일 집회 뒤에 출석하겠다”는 뜻을 밝혀놓은 상태였다.
경찰은 지난 23일 최 대표 등에게 30일까지 출두하라는 3차 출석요구서를 보낸 뒤 날짜를 기다리고 있었으나 검찰이 25일 오후 갑자기 서울 종로경찰서에 최 대표 등 4명을 지목해 체포영장을 신청하도록 지휘했다고 밝히고 있다. 이 때문에 경찰은 밤샘작업 끝에 부랴부랴 서류를 준비해 26일 아침에 영장을 신청하는 소동을 벌여야 했다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이날 밤 법원이 4명에 대한 체포영장을 모두 기각한 것은 애초부터 예고된 것이었다는 평가를 낳고 있다.
검찰이 최 대표 등에게 집시법 위반 혐의와 함께 ‘10년 이하의 징역 또는 15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할 수 있는 중죄인 형법 185조의 일반교통방해 혐의를 적용한 것도 논란거리다. 검찰은 “6시간 이상 도심의 주요 도로를 점거해 교통소통을 방해한 것은 중대한 범법행위”라고 밝혔으나, 시민단체들은 “수백명의 자원봉사자까지 동원해 평화롭게 집회를 이끈 최 대표 등에게 과거 일부 폭력 시위자들에게나 적용하던 혐의를 씌우는 것은 공권력 남용”이라며 지적하고 있다.
◇ 왜 서둘렀나=검찰의 체포영장 청구 지휘에 대해 수사를 맡은 경찰도 애초부터 이해하기 힘들다는 반응을 보인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 관계자는 “검찰의 영장 청구 지휘는 매우 이례적인 것이었다”며 “나 같으면 신청하지 못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검찰은 이처럼 체포영장 청구를 서두른 데 대해 “17대 총선이 임박한 때에 정부가 불법집회로 규정한 대규모 야간 촛불시위가 계속될 경우 공정한 선거 분위기를 해칠 수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이번 조처가 지난 25일 고건 대통령권한대행 주재로 열린 국정현안 정책조정회의에서 선거기간 중의 탄핵 찬반집회를 원천봉쇄하기로 한 정부 방침의 연장선상에서 이뤄진 것임을 내비친 것으로 해석되는 대목이다.
이런 표면적 이유 이외에 “당국이 불법적인 촛불시위를 방관하고 있다”는 야당의 압박성 공세와 각계 원로들의 탄핵 관련 집회 자제 촉구, 탄핵 찬반집회 세력의 충돌 우려 등도 고려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법원의 영장 기각으로 검찰은 촛불시위 수사에 적잖은 난관을 맞게 된 것으로 보인다.
하석 이태희 기자 hgrh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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