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천엔
국제전화도 없는데 “국제전화선 다 잘랐다” 보도…
정치적 테러 가능성이나 후진성만 부각
단둥·옌볜= 글 이춘재 기자 cjlee@hani.co.kr
· 사진 류우종 기자 wjryu@orgio.net
북한 용천역 열차폭발 사고에 대한 외신들의 보도는
과연 믿을 만했는가. 중국 단둥과 옌볜에 사는
조선족들은 이 질문에 부정적인 답을 내놓는다. 이들은
용천 참사에 대한 일부 외신들의 보도가 지나치게
과장됐다고 생각하고 있다. 특히 단둥 등 중국
국경지대에서 취재한 보도 중 상당수는 북한의
후진성을 은근히 강조하는 불순한 의도가 숨어 있는
것으로 본다.
기본도 모르는 저급한 보도 넘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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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단둥시 외곽의 호산장성과 인접해 있는 북한
국경 마을에서 지난 4월25일 북한군 경비병과 마을
주민이 대화를 나누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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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월22일 용천 참사가 발생한 직후 국내 신문·방송사와
전 세계 주요 외신들은 중국 랴오닝성 단둥시에
특파원들을 대거 파견해 단둥발 소식을 잇따라
내보냈다. 이들은 단둥에 살고 있는 북한 화교(북한에
살고 있는 중국인)의 친척들과 북한과 무역을 하는 중국
상인들을 주요 취재원으로 활용했다. ‘단둥의
소식통에 따르면’ 등으로 시작되는 보도는 대부분
이들을 취재원으로 활용한 것이다. 중국 정부가
외신들의 취재에 응하지 않았기 때문에 외신들의
취재활동은 극히 제한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조선족들은 이런 단둥발 소식 중 상당수를
음해성 보도로 보고 있다. 특히 사고 초기에 쏟아진
대부분의 외신 보도는 북한 사회에 대한 기본적인
정보도 모르는 저급한 수준의 것이었다고 주장한다.
가장 대표적인 게 “북한 정부가 사고 소식을 외부에
알리지 않기 위해 용천 지역의 국제통신망을 단절했다”는
보도다. 조선족 신문인 <조선문보> 단둥특파원
윤선일 기자는 “용천에는 원래 국제전화가 없고
비교적 큰 도시인 신의주에도 국제전화가 되는 호텔은 2개뿐”이라며
“무슨 근거로 이런 보도가 나왔는지 이해할 수 없다”고
말했다. 그는 “외신들이 인용한 ‘단둥의 소식통’이라는
게 대부분 북한 화교의 친척들이나 중국 무역상들인데
이들이 제공한 정보는 믿을 만한 게 못 된다”며 “이들은
대부분 북한 사회를 폄하하거나 김정일 정권에 강한
거부감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라고 말했다.
윤 기자의 설명에 따르면 단둥의 민간인(중국인과
조선족)은 북한 정부의 허가를 얻어 신의주에
들어가더라도 사전에 허가를 받은 행선지만 방문해야
한다. 무역상들이나 관광객들은 신의주 세관이 입주해
있는 호텔에서만 숙박해야 하고, 화교 친지들은 화교의
집에서만 머물러야 한다. 윤 기자는 “특히 이번
사고처럼 비상 사태가 발생한 때는 감시가 더욱 심해져
행동에 큰 제약을 받는다”며 “이런 상황에서 화교
친척들이나 무역상들이 용천 사고에 대해 무엇을 보고
들었다는 것인지 의문”이라고 지적했다.
북한의 의료시설에 대한 외신들의 보도도 마찬가지다.
외신들은 북한의 의료시설이 매우 열악해서 부상자가
단둥으로 많이 이송될 것이라고 보도했다. 북한과
무역을 하고 있는 단둥해외공정유한회사 김덕성 경리는
“용천은 워낙 작은 곳이라 병원 시설이 안 좋지만
신의주는 시설이 좋은 큰 병원들이 몇개 있다”며 “갑자기
큰 사고가 나서 약품이나 의료장비가 부족할지는
모르지만, (신의주 병원들은) 단둥의 큰 병원들보다 더
깨끗하고 위생적이다”라고 말했다. 그는 “북한의
의료시설은 중국의 작은 도시에 불과한 단둥에 의존할
만큼 그렇게 열악하지는 않다”고 덧붙였다.
신의주에는 인민병원과 군대병원 등 비교적 현대식
시설의 병원들이 있는데 이 병원들의 치료 수준이
상당한 수준에 올라와 있다는 것이다.
조선족들은 ‘용천 참사가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탄
열차가 통과한 뒤 30분 만에 발생했다’는 오보는 북한
사회에 불안감을 조장하려는 의도가 숨어 있다고 본다.
김 위원장의 열차가 사고 발생 9시간 전인 22일 새벽에
통과한 사실은 단둥에서 쉽게 확인할 수 있는 정보다.
단둥한인회 관계자는 “용천 참사 하루 전인 지난 4월21일
사업 때문에 단둥을 찾아온 한국인 사업가들을
압록강변 ㅈ호텔에 투숙시켰는데, 중국 공안(경찰)이
갑자기 ㅈ호텔에 묵고 있는 외국인들을 그날 밤 모두
다른 호텔로 보냈다”라며 “김 위원장이 다음날 새벽
압록강철교를 통과하기 때문에 중국 당국이 미리
안전조치를 취한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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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천 열차 폭발 사고 부상자가 이송될 것으로
알려진 단둥시 군부대 병원 병실 모습. 많은
부상자가 이곳으로 이송될 것으로 전해졌으나 실제
이송된 부상자는 단 한 사람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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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족들은 이번 참사에 대한 북한 정부의 태도를
매우 이례적인 것이라고 평가한다. 북한 정부가
과거와는 달리 신속하게 참사 상황을 공개하고
국제사회에 도움을 요청했기 때문이다. 중국 지린성
옌볜조선족자치주 옌지시 관광국의 한 간부는 “<조선중앙통신>
등 국영 언론매체가 한국을 비롯한 국제사회의 지원
사실을 정확하게 전하고 있는 것은 매우 보기 드문 일”이라고
평가했다.
북한은 이번 참사 직후에도 무역과 국제관광 등
해외교류를 중단하지 않았다. 해마다 단둥에서는
중국인과 조선족들을 상대로 신의주 1일 관광(4월 말∼10월)을
실시하는데, 올 첫 관광객 90명이 사고 발생 이틀 뒤인 24일
정상적으로 신의주로 건너갔다가 ‘무사히’ 돌아왔다.
북한 정부, 국제사회 지원 정확하게 알려
북한~중국간 무역도 차질 없이 이뤄지고 있다.
단둥화양해외공정회사 관계자는 “사고 당일
하룻동안만 단둥에서 신의주로 가는 화물수송이 끊겼을
뿐 다음날부터 모든 세관 업무가 정상적으로 이뤄지고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신의주와 단둥을 잇는
중조우의교(中朝友誼橋·압록강철교)와 나진·선봉시와
중국 훈춘시를 연결하는 권하대교는 사고 당일에도
정상적으로 개통됐다. 북한과 러시아를 연결하는
조러철교도 정상적으로 개방됐다.
조선족들은 용천 참사에 대한 일부 외신들의 ‘왜곡
보도’가 북한의 개방 움직임에 악영향을 끼치지
않을까 우려하고 있다. 옌지시 관광국 관계자는 “북한
정권도 중국처럼 개혁·개방을 추진하는 게 대세라고
인정하고 있었는데 용천 참사로 그 전망이 어두워졌다”며
“외신들이 이번 사고를 정치적 테러로 연결시키거나
북한의 후진성을 부각하려는 것으로 활용한다면 김정일
정권을 자극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단둥에서 ‘물’ 먹었네?
용천 참사가 발생한 지난 4월22일 오후 1시 <한겨레21>
취재팀은 중국 단둥에 있었다. 창간 10돌
기획연재물인 ‘세계의 국경지대를 가다’를
취재하기 위해서였다. 열차 폭발 사고가 발생한
그 시각 취재팀은 압록강변에서 배를 타고 신의주
강변을 취재하고 있었다. 단둥에서 용천까지의
거리는 불과 20㎞. 당시 용천이나 신의주에
외신들이 들어가 있을 리가 없었다. 따라서 <한겨레21>
취재팀은 참사 당시 사고 현장에 가장 가깝게
있었던 외신이었던 셈이다.
그러나 취재팀은 용천 참사를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 신의주 하늘에 거대한 검은 연기가 솟아
오르는 모습이 단둥에서 목격됐다는 보도가 사고
다음날 외신을 타고 전해졌으나, 당시 취재팀은
거대한 연기는커녕 공장 굴뚝 연기 하나 발견하지
못했다. 신의주와 단둥을 잇는 압록강철교 위에는
많은 자동차들이 오가고 있었다. 취재팀은 고성능
카메라와 망원경을 이용해 신의주 땅을 눈이
빠져라 쳐다봤지만 전혀 사고 낌새를 눈치채지
못했다. 취재팀의 망원경에 잡힌 신의주 시민들의
모습에서도 참사에 대한 단서를 발견하지 못했다.
압록강변에는 그림을 그리러 나온 듯한 학생들과
배를 손질하는 어른들이 있었다. 취재팀이
반갑다는 뜻으로 손을 흔들자 그들은 환하게
웃으며 손을 흔들어줬다.
취재팀은 그날 밤 단둥 취재를 마친 뒤 선양의
한 한국음식점에서 TV를 보다가 참사 소식을
비로소 알게 됐다. MBC의 저녁 9시 뉴스에 ‘용천역
열차 폭발 사고로 1천여명 사상’이라는 자막이
흐르는 동안 입에서는 저절로 다음과 같은 말이
흘러나왔다. “물 세게 먹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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