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발자로서... SW를 개발해서 먹고 사는 개발자로서..
SW 불법 복사가 만연한 국내 현실에 한탄하고 비관한 적이 한두번이 아닙니다. 다들 비슷하시겠지요. 뼈빠지게 개발해서 시장에 내놓았는데 불법으로 복사해서 쓰는 사람들 때문에 망했다는 회사 이야기, 여러번 들었지요. 심지어는, 불법 복사해서 쓰던 사용자가 전화를 걸어서 고객지원을 당당히 요청하고.. 더욱이 어처구니없어하는 개발자에게 '써주는 게 고맙지 않냐?'라고 했다는 얘기도 들었습니다.
며칠전에 기사 하나를 봤습니다. 일본의 정품 SW 사용 실태에 대한 기사였습니다. 일본에는 건물 한 층을 다 차지하는 SW 매장이 있고, 거기엔 SW를 사러 온 사람들이 바글거리고, 집에서 쓰는 SW를 사용자 수만큼 라이선스를 구입한다는... 우리나라의 현실에 비춰보면 꿈같은 얘기였습니다. 짤막한 기사니까 직접 한번 읽어보시죠.
http://www.dt.co.kr/contents.htm?article_no=2006042502010760600002
뭐 이 포럼에는 현재 일본에 일하고 있는 개발자도 꽤 여럿 되고 하니까 이 짧은 기사 하나보다 훨씬 사정을 잘 아는 분들도 있겠지요. 또 알고보면 실제보다 좀 과장된 기사일 수도 있겠습니다. 정치인이 태생적으로 거짓말을 달고 다니는 종족이라면, 기자라는 종족은 태생적으로 과장을 달고 사는 종족이니까요. 그렇더라도, 설마 아주 없는 걸 기사로 썼겠습니까. 서점이나 레코드점처럼, 대형 빌딩의 한 층 전체가 SW 판매점이라는, 그런 판매점이 존재한다는 사실만으로도 일본 개발자들의 현실은 한국 개발자보다 수천배는 나을 거 같습니다.
물론 우리나라의 불법 복제 현실이 다른 나라들과 비교했을 때 최악이라고 할 수는 없습니다. 2000년쯤 몇번 출장을 갔던 말레이시아... 정품이 아닌, 불법 복사 SW를 마치 정품처럼 버젓이 판매하는 판매점이 한 건물 안에 여러개씩 있고 그걸 사러 온 사람들이 버글거리는 것을 보고 정말 경악했습니다.
그것도 한때 우리나라에서도 유행했던 것처럼 CD 라이터로 구운 것이 아니라, CD를 프레스한 거였습니다. 아시죠? 구운 시디와 프레스 시디의 차이점.. 게다가 포장도 마치 정품처럼 되어 있었습니다. 약간은 조잡하지만 그럴싸하게 인쇄된 표지가 있고 겉에는 얇은 비닐로 밀봉된, 정말로 자세히 보지 않으면 정품처럼 인식할 수 밖에 없는 정도였습니다. 듣자하니 중국이나 다른 동남아 국가들도 비슷하다고 하더군요.
그런데... 우리나라의 현실이 중국이나 동남아 나라들보다는 분명히 낫긴 하지만, 그렇다고 왜 일본과 그렇게 차이가 나는지에 대해서는 제대로 생각해보는 사람이 없는 거 같습니다. 불법복사가 만연해서 개발자와 개발회사가 먹고 살기 힘들다는 얘기는 많은데, 왜 그렇게 되었는지 원인은 아무도 따져보지 않는 거 같더군요.
아무런 원인이 없다면, 우리나라 사람들이 원래부터? 태생적으로? 일본 사람들보다 비양심적이고 도둑질에 익숙하다는 얘기밖에 더 되겠습니까. 그리고 일본 사람들은 원래? 민족적으로? 양심적이라는 얘기겠지요... 말이 됩니까. 독도를 지네꺼라고 주장하는 넘들인데.
아까 그 기사를 보고 나서, 요 며칠동안 여러가지로 골똘히 원인을 생각했더랬습니다. 그리고.. 한 가지 결론이 나오더군요. 정말 아이러니하고 또 정말 슬픈 결론인데... 개발자 자신이 가장 큰 원인이라는 겁니다.
저는 89년에 프로그래밍을 공부하기 시작했습니다. 고등학교 2학년때였습니다. 베이직과 포트란으로 시작해서 91년에는 터보파스칼과 터보C에 푹 빠져서 지금까지 왔습니다. 그리고 그때쯤의 초기 프로그래머들이 어땠는지 기억합니다.
하긴 그때는 프로그래머가 딱히 따로 있었다기 보다는, 모든 PC 매니아들이 잠재적으로 프로그래머를 지향하고 있었지요. PC 조립 등 하드웨어쪽이나 PC 통신 등 SW 개발 자체보다는 다른 쪽에 더 많은 관심이 있는 사람들이 있었지만, 뚜렷하게 구별되진 않았습니다. PC 조립을 하는 사람들도 프로그래밍에 상당한 관심이 있었고 프로그래밍쪽에 더 많은 관심이 있었던 사람들도 하드웨어나 통신에도 관심이 많았습니다. 당시의 PC 매니아들은 다들 잠재적인 프로그래머였죠.
이 사람들이... 잠재적인 프로그래머였던 이 초기의 PC 매니아들이... 우리나라의 불법 복사 문화를 처음 만들어갔다고 생각합니다. 5.25인치 디스켓을 최소 수십장, 많게는 수백장씩 가지고 있었습니다. 1.2메가짜리 디스켓이니까 얼마 안되는 용량이지만 그때는 무슨 영화 파일이나 mp3같은 대용량 파일이 거의 없었습니다.
그 많은 디스켓들은 다 소프트웨어였습니다. 당연히 도스는 기본이고, 윈도우 3.0/3.1, 그리고 터보C, 터보파스칼같은 개발툴들도 있었습니다. 캐드를 쓸 줄도 모르고 필요도 없으면서 오토캐드는 대부분 디스켓으로 수십장씩 가지고 있었습니다. 마치 불법으로 복사한 SW 디스켓들이 귀중한 재산이라도 되는 것처럼, 쓰지 않는 것들까지 무작위로 복사해서 소장(?)하고 있곤 했습니다. 저도 그런 불법복사 디스켓을 한 200장? 정도 가지고 있었던 거 같습니다. 디스켓 컨테이너가 꽤 여러개였습니다.
물론 그 당시의 사람들 중에 그렇지 않은 사람들도 몇몇 있었겠지요. 하지만 바로 제 주위에서는 못봤습니다. 많지는 않았다는 얘기겠지요.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을 겁니다. 당시에 PC를 조립해서 팔던 판매점들이 먼저 시작한 것 아니냐구요. PC 판매점에는 흔히 한쪽벽을 꽉 채운 디스켓 책장이 있었고, 돈을 받고 복사해주거나 간혹 단골에게는 디스켓 값만 받고 복사해줬습니다. 그런 PC 판매점을 운영하던 사람들이 더 문제라고 생각하면 마음이 조금이라도 편할까요.
그런데, 생각해보면 그런 판매점을 운영하던 사람들도 초기 PC 매니아였습니다. 나중에는 딜러라고 흔히 부르게 된 사람들도 마찬가집니다. 제 친구들 중에서도 그런 판매점에서 일하던 녀석이 몇 있었습니다. 저와 별 다르지도 않았던 친구들이었죠. 가게 주인들도 제 또래보다 나이가 몇살 많았을 뿐 거기서 거기, 관심사나 SW에 대한 인식이 대략 비슷한 사람들이었습니다. 결국 '그넘이 그넘'입니다.
정말 아이러니하지 않습니까. 초기 개발자들이 앞장서서 우리나라의 불법 복사를 '선도'했던 겁니다. 저도 포함해서요. 요즘 식으로 말하면 PC 문화의 '얼리 아답터'였던 이런 초기 PC 매니아들이 SW를 불법으로 복사하는 문제에 대해 무감각했고 심지어는 자랑스러워했습니다. 그리고 그 사람들 중 상당수가 개발자였고, 우리나라의 SW 산업의 초기를 열었습니다.
물론 당시에는 정품 SW를 구입할 경로가 많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거꾸로 생각해보면 닭과 달걀입니다. 불법 복사가 너무나 만연해있었기 때문에 정품 SW 판매가 자리를 잡을 새가 없었습니다. 그리고 설령 정품을 구입할 곳이 있었다고 해도 안했을 겁니다. 그땐 그랬습니다.
92년이던가 93년이던가 아래아 한글의 2.0 버전이 혁신적인 기능과 함께 본격적인 복사 방지 기능으로 무장하고 나왔을 때, 출시 한달도 못되어 누군가가 락을 깨어서 배포해버렸을 때, 프로그래머 지망생이었던 저는, 지금 생각하면 부끄럽게도 아래아 한글 2.0의 락을 깬 그 사람을 부러워하기만 했습니다. 저만 그랬나요?
가끔씩 글로 보는 그 당시 80년대말과 90년대초를 추억하는 개발자들의 기억에는, 자신이 불법으로 복사해서 쓰던 개발툴에 대한 기억이 통째로 빠져 있거나, 혹은 '뭐 그땐 그랬으니까'라는 식으로 현재의 현실과의 연관성을 인정하지 않습니다.
저도 그래왔습니다. 제가 초기의 일반 사용자들에게 불법복사를 '친절하게' 가르쳤으면서, 저를 거쳐간 온갖 SW의 카피들이 수백, 수천 카피나 될텐데도, 마치 저는 지금의 현실과는 무관한 듯이, 불법 복사가 만연해서 개발해서 먹고 살기 힘들다는 한탄을 해왔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니, 그때 제가 수도 없이 복사해준 디스켓들이 빙글빙글 돌아서 부메랑으로 돌아와 저를 때리고 있네요.
그런데도, 지금에 와서도 저는 충분하지가 않군요. 회사에서야 제가 IT 책임자이기도 하고 해서 SW는 모두 정품으로 사서 씁니다만, 집에서 쓰는 SW는 정식으로 구입한 것이 아마 다섯 손가락만으로 꼽을 겁니다.
뭐... 제가 너무 오버해서 생각하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제가 생각하는 만큼 직접적이고 강한 인과관계는 아닐지는 몰라도, 최소한 베스트 몇 정도 뽑으면 상위에 올라갈 정도의 연관성은 있겠지요.
이제 와서... 지금에 와서 뭘 어떻게 하면 상황이 나아질 수 있을까요. 개발자가 업무에서조차 불법 복사한 개발툴을 사용하는 경우도 종종 봅니다. 뭐 드문 경우도 아니지요? 드물지 않다 정도가 아닙니다. 2002년이었던가 이 포럼에서 설문조사를 했을 때, C++빌더 혹은 델파이 개발자들 중에서 정품을 사용하는 퍼센트는 10%도 안되었습니다. 몇년이 지난 지금이라고 갑자기 정품 사용률이 50%쯤으로 올라갔을까요. 아닐 겁니다. 뭐 비주얼스튜디오 등 다른 개발툴쪽이라고 특별히 상황이 다를 이유도 없겠고요.
그렇다고 이 포럼에 들리는 개발자들에서 정품이 아닌 불법 복사본을 사용하는 개발자들을 비난하고 싶은 마음은 아닙니다. 전혀 아닙니다. 현실이 그렇다...라는 말이 실제로 얼마나 묵직한 의미가 있는지 아니까요.
개발자들이 이런 최소한만큼은 인식하게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불법으로 복사한 개발툴을 쓰는 것에, 회사 자금이 부족해서, 회사가 작아서 등의 이유를 붙일 수는 없다고요. 공장 운영하는 회사들의 다수가 훔친 기계로 제품 생산하는 건 아니잖습니까. 원칙을 따지자면, 자금이 부족해서 '생산설비'인 개발툴을 구입할 수 없다면 '개발 공장'인 개발회사는 애초에 만들지 말았어야 하지 않습니까.
심지어는, 어떤 개발자들은, 불법으로 복사한 SW를 쓰면서 '이런 구질구질한 SW는 돈을 낼 가치가 없다'라고 이유를 댑니다. 그런 말을 내뱉고도 태연히 그 SW를 계속 씁니다. 입장을 바꿔서, 다른 개발자가 내가 파는 SW를 무단 복사해서 쓰면서 그런 말을 한다면 기분이 어떻겠습니까.
이유를 붙이고 싶으면, 최소한 양심이 부족해서라는 것을 스스로 인정했으면 좋겠습니다. 돈과 양심을 맞교환한 거라는 것을 인정하고 부끄러워하는 마음이라도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당장 정품을 구입하지 않더라도 말입니다. 그래야 뭔가 조금씩이라도 현실이 나아지지 않겠습니까. SW 개발회사가 SW를 불법 복사해서 단속되는 현실에, 그러고는 단지 재수가 없어서 걸렸다고 투덜거리기까지 한다면, 일반 사용자들이 과연 SW를 돈주고 사는 것이 당연하다는 인식을 가지겠습니까.
상쾌한 아침부터 많은 개발자들이 껄끄러워할 얘기를 해서 너무너무 죄송합니다. 제가 특별히 양심적인 위인이라서 이러는 게 아닙니다. 저도 이 포럼을 운영하는 거 외에는 보통 개발자일 뿐이고 보통 사람들이 하는 잘못들은 저도 많이 합니다. 주변에 쓰레기통이 안보이고 사람도 별로 없으면 담배꽁초도 휙 버려버리고, 취했을 때 근처에 화장실이 안보이면 한적한 곳에 살짝 실례도 합니다. 핸들을 잡으면 과속도 하고 신호위반은 밥먹듯이 합니다.
재미도 없고 껄끄러운 이런 글을 주절주절 쓴 것은 양심의 문제로서가 아니라 개발자들의 생존과 이익을 위해 실제로 필요하다고 생각해서입니다. 개발자들이 처한 이 난국은 개발자들이 스스로 만들었고, 개발자들이 스스로 인식을 바꾸지 않으면 쉽게 나아질 수도 없는 문제라고 생각해서요.
하지만.. 이유가 어떻든, 껄끄러운 이야기를 써서 다시 한번 죄송합니다.
저도 기분 적잖이 껄끄럽네요.
여러가지 해법을 찾아 봐야 되지만.. 일단 정부의 정책이 어느정도 중요하지 않나 생각 합니다. 대부분 어떤 불법을 저지르는 사람들이 그것이 불법이다 라는 생각조차 하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나의 예로,, 우리가 한참 "운전중 안전벨트 착용" 상태를 무지 심하게 단속을 했습니다.
그러니 운전자들이 모두 안전벨트를 하게 되었고.. 또 해보니까.. 그렇게 어려운 일도 아니고 또한 벨트를 착용할 경우 좋은점을 스스로 느끼게 되어 요즘은 벨트를 착용 하지 않는것이 더 이상하게 되었죠...
또한 횡단보도 정지선 지키기도 단속이 들어가 지금은 많이 개선되었고.. 그 효과가 있는것 같습니다.
한순간에 시간이라는 역사를 극복할 수는 없습니다. 일본이 그만큼 시간적으로 경험을 많이 해서 앞서 가는것이라 생각합니다.
우리나라는 SW 불법복제 단속 하고.. 기간을 정해서 합니다.
어제도 저희 회사 사람하고 술자리에서 예기를 했는데...
그전에 있던 회사는 ,, 불법복제 단속이다.. 라고 하면.. 샷다(회사 문을 비유해서)내리고 일한다고 하고 누가 오면 암호까지 대가면서 일을 한다고 하더군요..
제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정부의 어느정도 불법사용에 대한 척결 의지가 있어야 된다고 봅니다. 대부분 이러한 단속이 국내 경제에 미치는 영향을 생각한다는(?) 잘못된 발상으로 흐지부지 되서 문제이죠.. 즉 국내 회사가 SW 개발보다는 해외 SW 사용하는 비중이 경제에 영향을 더 주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 합니다.
언젠가는 좋은날이 오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