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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963] Re:<펌글> 전두환 바로보기
어너니머스 [] 1446 읽음    2003-10-19 12:39
  만일 님이 전두환 전 대통령을 개인적으로 잘 알지 못하신다면 이런 사실이 아마 참고가 될 것입니다.  그 어른은 군에서 사단장 시절에 구보 훈련 때 사병들 맨 앞에서 뛰시던 분이었습니다.  그리고 1사단장으로 승진하시기 전에 공수 여단장이셨을 때는 장성이 직접 공중 낙하 시범을 사병들에게 보여주는 특이한 장성이었습니다.

  님이 군대 갔다 오셨다고 하셨으니 이처럼 구보 훈련 때 사병들 맨앞에서 뛰고, 공수 훈련 시범을 직접 보여주는 장군을 보신 적이 있으십니까?  일반적으로, 군대에서 장성의 권위는 사병들의 눈에 뛰지 않는데 있습니다.  그러나 전두환 장군에게는 특이한 스타일의 리더십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공수 여단장 시절에 이렇게 솔선 수범하는 근무를 하셨기에 당시 이희성 장군이 제1군단 군단장으로 재직하던 1군단 예하 1사단장으로 1978년 1월에 승진하실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참고로, 광주 사태 진압에 직접 관여한 두 주요한 장성은 광주 인사인 정웅 장군과 1980년 당시 계엄사령관 이희성 장군이었습니다.)

  그리고 1사단 사단장으로 근무하시던 1978년 여름에 최초로 땅굴을 발견하신 것이 공로로 인정되어 그 이듬해 8월에 보안사령관으로 승진 발령되셨을 것으로 추측됩니다.  여하튼 국가 원수 박정희 대통령께서 정보부장 김재규에게 시해당하시던 10.26 사태가 발생한 것은 전두환 소장이 보안사령관으로 부임한지 불과 두어달 만의 일입니다.  이 어른이 전방에서 사병들과 더불어 구보하시던 때가 바로 몇달 전이었다는 것을 감안하면 참으로 역할의 변화였습니다. 

  김재규가 누구였습니까?  이희성 중장이 1군단장으로 근무하시던 1군단은 3군사령부 예하 부대였는데, 김재규가 바로 3군 사령부 사령관으로 있다가 정보부장이 된 인물이었습니다.  당시 군 최고 지휘관이었던 정승화 참모총장과 친구 사이였던 이분은 중공군 팔로군 출신인 정승화 장군보다도 오히려 더 군부의 실세였을 것으로 관측됩니다.  따라서, 만일 그의 박정희 대통령 시해 사건 직후 만일 전두환 장군의 신속한 행동이 없었더라면 김재규 구데타의 시나리오가 가능하였습니다.

  당시 김재규의 구데타를 견제할 수 있는 유일한 인물은 정승화 장군이었는데, 정 장군은 김재규를 체포하기는 커녕 오히려 김재규 편에 기울어져 있었던 듯합니다.  그리고 최규하 국무총리 역시 아무런 손을 쓰지 않고 있었습니다.  아니, 군부 실세였던 김재규를 감히 건드리지 못하셨을 것입니다.  당시 김재규에게 구데타 음모가 있었는는 별도의 문제입니다.  그러나 당시 정황은 그런 시나리오를 가능케 합니다.  박정희 대통령을 시해한 그가 국가 원수가 시해된 사건을 당분간 공포하지 말도록 지시하였을 때 그의 의도가 수상하지 않습니까?  그리고 김재규의 위세에 눌려 규하 국무총리가 대통령이 시해된 이 비상 사태를 국민에게 알릴 수 없었으니 비록 국민은 모르고 있었으나, 그 얼마나 숨막히던 순간이었습니까?

  정치에 전혀 이해 관계가 없는 한 역사학도의 시각으로 제가 바라볼 때 김재규의 군부 구데타를 저지한 것은 당시 신임 보안사령관 전두환 장군의 발빠른 행동이었습니다.  박정희 대통령 시해 이후 사실상 최고 권력자였던 김재규를 감히 누가 목숨을 걸고 체포할 수 있었겠습니까?  그러나 다행히도 그때 우리나라에 그럴 용기를 가졌던 장군 한 분이 있었습니다.  별을 달고 낙하 훈련 시범을 보이던 장군, 사병들과 더불어 뛰던 장군이라면 그런 기백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김재규가 그의 군 인맥을 동원시키는 불행이 닥치기 전에 신속하게 국무위원들과 상부에 보고하여 정승화 장군으로부터 김재규 체포 명령을 받아낸 것은 김재규의 구데타를 차단하는 행위였습니다.

  김재규의 구데타는 더 이상 진행되기 전에 전두환 장군에 의해 예방되었기 때문에 그에게 참으로 구데타 의도가 있었는지는 풀지 못할 숙제로 남아 있습니다.  그러나 김재규의 그 이후의 계획이 무엇이었든 그가 정국의 주도권을 계속 장악하고 있으려 하였던 사실, 이것만은 분명합니다.  그렇다면, 만일 김재규가 신속히 체포되지 않았다면 우리는 아마 매우 불행한 미래를 맞이하게 되었을 것이며,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는 뒤로 후퇴하였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님은 구데타를 어떻게 정의하십니까?  김재규의 구데타를 사전에 예방한 분을 님은 군사반역자라고 보십니까?  (사실, 김재규의 박정희 대톨령 시해는 그의 성격과 관련이 있어 보입니다.  그는 시기심이 강한데 그날 박 대통령께서 김재규의 경쟁자 차지철 경호실장은 추켜세우시고 김재규는 깍아내리셨다고 합니다.  따라서 그의 대통령 시해 동기가 비록 계획된 구데타는 아니었다 할지라도 시해 사건 이후 그는 구데타 혹은 구데타에 준하는 행동을 선택하였을 가능성이 아주 농후합니다.)

  여기서, 잠시 5.18 광주 사태도 언급하겠습니다.  본래, 정말로 구데타를 일으키려던 자는 김대중씨였습니다.  1980년에 누가 구데타를 일으키려 하였느냐의 기준은 누가 최규하 대통령을 하야시키고 정권을 잡으려 하였느냐의 물음에 귀착되어야 합니다.  그러면 누가 최규하 대통령을 강제로 하야시키려 하였습니까?  김대중씨였습니다.

5.18 단체는 5.18 민주화운동의 주역이 구두딱이, 때밀이, 고등학생, 실업자, 노동자, 전과범 등(도청에 다이너마이트 폭파 장치를 하고 기관총을 발포하였던 강경파들)이라고 기록을 남기지만 여기에 교묘한 숨김이 있습니다.  본래 5월 21일 민중봉기를 계획하였으며, 훗날 다수가 광주민주화 운동 포상을 받은 이들이 있습니다.  김대중 홍위병들이 최규하 대통령을 하야시키겠다고 하였습니다.  그 의미는 무엇입니까?  김대중씨를 대통령으로 세우겠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바로 이것을 가리켜 쿠데타라고 말합니다. 

  김대중씨 홍위병들의 5월 21일 전국적 민중봉기 계획이 폭로된 때는 1980년 5월 16일 오후 6시 이화여대 강당에서 전국 홍위병들의 비밀연속회의가 당국에 적발된 때였습니다.  그리고 그 이튿날인 토요일 비상국무회의가 열려 5.17 계엄 확대가 그날 자정에 선포되었습니다.  그리고 비상국무회의에 앞서 당시 국무총리는 전국지휘관회의를 소집하고 더 이상 내무부가 치안 유지를 할 수 없는 이때에 군부가 나라를 구하기 위한 애국적 결단을 내려달라고 호소한 바 있습니다.

  육군본부 이희성 장군의 지휘 하에 계엄군이 전국 각 대학교에 보내지기 시작한 것은 이때였습니다.  여기서 유의할 것은 휴교령과 더불어 계엄군은 전국 각 대학교에 동시에 배치되었습니다.  계엄군이 광주 전남대학교와 조선대학교에만 배치되었다는 주장은 사실이 아닙니다.

5.18 광주 폭동을 처음으로 선동한 이는 당시 북한 공산주의 서적에 심취해 있던 윤상원이었습니다.  그는 본래 5우월 21일로 예정되어 있던 민중봉기의 주동 인물은 아니지만 전국적 민중봉기를 당국이 5.17 계엄확대로 예방하려 하자 충동적으로 폭동을 주동하고 광주 사태의 리더로 떠올랐습니다.

  그러면 누가 광주 사태를 진압하였습니까?  비록 그것이 과잉 진압이었다는 시위대의 주장에 일리가 있다 하더라도 그 시위 진압 명령자는 광주 출신 장성이요 국회의원인 정웅 장군이었습니다.  아니, 자기네 지역 인물인 정웅 장군이 광주 사태 진압 명령자라는 사실을 광주 시민이 모른다면 누가 안다는 말입니까? 

  당시 정웅 소장이나 전두환 소장이나 직급이 거의 비슷하였습니다.  전혀 정웅 소장의 지휘 계통에 전두환 장군은 관련되어 있지 않았으며, 더구나 그 수하에 몇명의 수사 병력밖에 없는 전두환 소장은 전혀 작전에 관여할 위치에 있지 않았습니다.  님이 군대 갔다 오셨다 하니 군대 행정상 그것은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잘 아실 것입니다.   

  광주의 정웅 장군이 시위를 진압하는 방법에 문제가 있었는지 시민군과 군경 사이에 발포 사건까지 터졌기에 이희성 계엄사령관이 직접 시위 진압 작전에 나서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이 경우에도 광주 사태 진압 작전은 전두환 장군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습니다.

  우리는 사람의 세치혀가 무슨 거짓말도 지어낼 수 있다는 것을 잘 압니다.  그러나 광주 사태 진압 명령자는 비록 그것이 시민군의 주장대로 과잉 진압이었다 하더라도 광주 출신(광주 인근 태생) 정웅 장군이었다는 사실을 누구보다도 잘 아는 광주 시민들이 그 누명을 엉뚱한 어른에게 뒤집어 씌우는 것이 광주 시민의 명예라고 저는 생각치 않습니다.  더구나 저는 그런 거짓말을 남에게 강제로 믿으라고 강요하는 것이 민주화 운동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거짓말도 너무 오래 계속되면 역사가 왜곡됩니다.  이제 진실을 말해야 할 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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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대학교 다닐때 운동권에 나오는 대자보들이 때에따라 거짓되고 조작되었다는 사실을 뒤늣게 깨달았습니다. 어느 운동권 학생이 운동권의 실체를 알고선 극렬극우로 돌변했다고 하는데 어렴풋이 그가 왜 극우로 돌아섰는지 이해할것 같습니다. 제 느낌은 , 이 분은 먼 훗날에 불순 정치세력과의 정권쟁탈을 승리로 이끌고 사회혼란을 바로잡은 영웅으로 TV 사극에 자주 등장할 인물입니다.

저는 역사의 진실을 알고자 합니다.
제가 여기다 올린 글은 그냥 지나칠 일이 아니라고 생각해서 여러분과 공감하자고 올린 글입니다.
한겨레 신문이나 오마이 뉴스가 그렇게도 송두율을 민주인사라 칭했을때 미주 통일신문은 간첩이라 알렸습니다.결국 여러 정황 증거로 간첩 아닙니까? 신문이란 때론 오보가 있을수 있습니다. 1가지 오보가지고 10가지 진실을 호도하지 마세요.

그리고 임프씨 당신의 믿음 대단하십니다. 정말 당신한테 실망했습니다.
이건 기록으로 밝혀진 사실인데. 그때 군인은 m16 소총을 가지고 있습니다. 근데 사망자 70% 이상이 M1 과 칼빈 소총에 의해 사망했다는 사실 아십니까?  즉 폭도들의 총에 맞아 70% 이상이 사망했습니다. 이 폭도들이 정상적인 폭도라 생각하십니까? 폭도들 속에 불순세력이 끼지 않고는 이런일이 일어날수 없습니다. 나를 고발하기 전에 배부전씨 부터 고발 하시죠. 클린턴도 명예회손으로 최낙정 장관을 고소했는데 못할거 없다 봅니다.
조준회 [makerjh]   2003-10-19 20:56 X
신문이란 때론 오보가 있을 수 있습니다.
물론입니다. 그러나 오보가 있었으면... 그 후에 정상적인 언론이라면 어떻게 합니까?..
그 사이트의 글을 제대로 읽어보신겁니까?..  자신의 오보에 대해서 시인을 하고 잘못을 바로잡던가요?.
이미 수년전부터 하이텔에서 배부전의 글을 접했지만.. 1가지 오보로 10가지 진실을 호도한다고 할만한 내용이 아닙니다.
제대로 균형잡인 시각을 가지신 분이라면.. 그 사이트에 대해 언론이란 말하지 못할겁니다.
송두율 교수에 대해서도 아직 아무것도 결론난것 없습니다.
그런데 님은 이미 간첩이라고 빨간칠을 하고 계시는군요...
정찬호.라다 [rada]   2003-10-20 04:38 X
고장난 시계도 하루에 두번은 맞습니다.
머슴.한석복 [han8783]   2003-10-20 09:20 X
이러글은 국민 전체 교육수준이 초등학교 일때나 먹히던 글 아닌가요..?
박지훈.임프 [cbuilder]   2003-10-20 18:33 X
말같지도 않은 말을 계속 반복하는 것은 반박을 기대하는 거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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