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고보니... 오래전의 일이라 거의 잊고 있었는데요.
웹에디터는 아니지만, 한때는 볼랜드가 오피스 제품들을 개발, 판매할 때도 있었습니다.
90년대초에, 볼랜드는 전세계 소프트웨어 업계에서 MS, 로터스에 이어 3위의 막강한 위치에 있었습니다.
당시에는 볼랜드가 오피스 제품군을 가지고 있었고 그걸로 MS에 강력하게 도전하던 시기였습니다.
국내에서는 오피스 제품이라는 개념조차 별로 없을 때여서 별로 알려지지 않았지만, 파라독스라는 이름은
들어보셨을 겁니다. 지금은 파라독스가 하나의 데이터 포맷 혹은 디비 엔진으로만 남아있지만 원래 파라독스는
로컬 데이터베이스 툴로, dBase의 가장 강력한 경쟁 제품이었습니다. 그리고 스프레드시트인 쿼트로프로도
엑셀의 강력한 경쟁자였습니다. 워드는 당시로서는 MS보다 시장점유율이 높았던 워드퍼펙트를 번들해서,
이 세가지를 기본으로 한 볼랜드 오피스라는 제품을 내놓고 MS 오피스와 치열하게 경쟁하고 있었습니다.
그뿐 아니라 애시튼 테이트를 합병해서 파라독스의 경쟁 제품이었던 dBase 자체를 자사 제품군에 포함시키기도
했습니다. 그런 이유로, dBase의 4버전이었던가 까지는 애시튼테이트의 브랜드로 나왔지만 5버전부터 마지막
7 버전까지는 볼랜드의 브랜드로 출시되었었지요. 파라독스에 dBase까지, 볼랜드는 당시에 큰 시장을 이루고
있었던 개인용 데이터베이스 시장에서 타의(MS까지도 포함해서) 추종을 전혀 불허하는 막강한 1위의 업체로
군림하게 되었습니다. 그 외에도 볼랜드가 인수합병한 오피스 관련 업체들은 몇개 더 됩니다. 볼랜드가
dBase를 인수한 얼마 후에 MS가 폭스소프트의 폭스프로를 인수합병한 가장 큰 이유도 이런 공격적인 인수합병을
해대는 볼랜드를 견제하려는 의도 때문이었습니다.
당시에 볼랜드의 CEO는 창업자였던 필립 칸이었는데, MS를 꺾겠다는 야망을 가진 사람이었습니다. 지금으로서는
불가능해보이는 일이지만, 당시로서는 MS도 지금만큼 엄청난 공룡도 아니었고(Windows95 출시 이전이니까)
볼랜드도 MS와 직접 비교가 될 정도의 규모였습니다. 물론 당시의 업계 규모가 지금보다 훨 작었으니 지금과
비교하면 물론 더 작았겠지만요.
그런 도전의 결과는 다들 아시겠지만, 볼랜드의 참패였지요. 보통 볼랜드가 90년대 중반에 몰락했었던 것이
볼랜드 C++이 비주얼 C++에 진 것이라고 알고 계시겠지만, 사실 볼랜드 C++의 시장은 일시에 팍 꺾였던 것은
아니어서 90년대 중반 이후로 서서히 점유율이 떨어졌습니다. 볼랜드가 무너졌던 이유는 필립 칸이 이 볼랜드
오피스에 무리하게 치중하는 바람에 자금 압박을 받았던 것입니다.
지금으로서는 놀랍게도, 볼랜드는 볼랜드 오피스로 MS 오피스와 저가 가격 경쟁을 벌였었습니다. 저가 경쟁에서
승리한 것은 MS였고, 볼랜드는 나락으로 떨어지게 되었습니다. 96년이었던가, 이런 경영 때문에 실리콘 밸리의
전설적인 인물이자 볼랜드의 창업자였던 필립 칸이 볼랜드를 떠나게 되었죠.
그 이후로 볼랜드는 오피스 관련 제품들에 대한 사업을 완전히 접었습니다. 지금은 개발툴과 미들웨어만
다루고 있죠. 사실 개발툴이 볼랜드의 본업이기도 했고요. (터보파스칼과 터보C로 시작된 회사니까요)
과거에도 그랬지만, 지금도 볼랜드는 역사상 최대의 독립 개발툴 벤더입니다.
독립 개발툴 벤더라는 말은 쉽게 말하면 개발툴 전문 회사라는 말인데, 다른 대부분의 개발툴을 판매하는
회사들이 개발툴을 주력으로 하고 있지 않기 때문에 생긴 말입니다. 개발툴을 판매하는 다른 대부분의 회사들,
그러니까 MS, 선, IBM, 오라클, 사이베이스, BEA, 이런 회사들의 주력은 OS, RDBMS, WAS 같은 플랫폼입니다.
플랫폼을 주력으로 하면서 개발툴을 플랫폼 확산의 미끼로 이용하는 거죠.
순수하게 개발툴 자체의 수익을 바라보고 개발툴을 개발하는 회사, 즉 독립 개발툴 벤더는 몇 되지 않습니다.
그중에 볼랜드가 가장 큰 회사이구요. 볼랜드 다음으로 가장 유력했던 파워소프트의 경우 90년대 중반에
사이베이스에 인수합병되었고, 자바쪽에서 가장 큰 시장을 가졌던 비주얼 까페의 경우 BEA의 자회사로 편입
되었다가 투게더소프트로 인수되고, 다시 투게더소프트는 볼랜드로 인수되었습니다. C/C++ 최적화로 유명했던
왓콤C/C++ 역시 사이베이스로 통합되었다가 공개 버전만을 남기고 시장에서 사라졌습니다.
사실... 이것이 제가 볼랜드에 올인하는 이유입니다. 개발툴을 판매하는 목적이 순수해야 개발툴이 제대로
만들어지고 배신을 하지 않습니다. MS같이 매번 버전이 나올 때마다 호환성은 어디다 내팽겨치고 새옷을 입고
나오는 개발툴이 바로 그 개발툴을 사용하던 개발자에 대한 배신이죠. 개발자가 필요로 하지 않는 것을 억지로
강요하는 개발툴이 바로 개발자에 대한 배신이고요. 개발툴 판매에 목을 매는 개발툴 전문 회사라야 개발자들이
요구하는 기능 자체에 집중하고 딴 욕심을 부리지 않습니다.
물론 오픈소스도 좋은 대안입니다. 필요하다면, 볼랜드포럼에 php나 MySQL같은 오픈소스 소프트웨어에 대한
지원도 추가할 수 있습니다. 뭐 이쪽으로는 다른 좋은 사이트들도 많으니 급하게 추진할 필요는 없겠고요.
볼랜드 오피스 얘기하다가 또 딴길로 샜네요.
볼랜드가 개발툴에 전념하는 지금이 개발자로서는 이상적인 상황이지만, 그래도 필립 칸이 설쳐대던 90년대
초반의 볼랜드가 훨씬 역동적이고 보기 좋지 않았나 하는 생각도 가끔씩은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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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파라독스 스크립트 좀 배우던 생각이 나네요.
요즘은 MS툴밖에는 없는 듯 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