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달 전이었나요.. 손목에 뭔가 오돌토돌한게 났습니다.
이게 머지? 하면서 간지럽지도 않은데 뭐든지 나온게 있으면 평탄하게 만들고 싶어하는 제 본능에 의해 손으로 만지니 터지면서 진물같은게 나더니만.. 상처가 아물지도 않더군요..
저는 강남구에 삽니다. 회사가 역삼동에 있었는데, 이상하게도 강남에는 맨 치과밖에 없더군요. 치과, 성형외과.. 다들 돈 잘 번다는 병원들입니다.
마침 회사 앞에 피부 비뇨기과가 있어서 가 봤습니다. 아주 멋진 인테리어를 해 놨더군요. 피부 에스테틱인지 먼지.. 옆에선 쭉쭉빵빵 아가씨들이 화장품 고르고.. 병원이라기 보다는 피부미용센터같은 느낌.. 좋은 곳이네.. 했습니다. 진찰이 시작되었습니다. 의사는 힐끗 한 번 보더니 '무좀'입니다. 라고 하더군요. 진균에 의해.. 몸에도 생긴다나요? 그러면서 요상한 눈초리로 '발에 무좀있죠?' 라고 물어보는겁니다. 저는 평생 무좀 걸린 적도 없는데 좀 기분이 나쁘더군요. 당연히 아니라고 했습니다.
마침 의료보험증을 안가지고 가서 진료비가 만원이 넘게 나오더군요.
간호사처럼 보이는 언니가 약 말고 뭔가를 내 놓습니다. '발'그림이 그려진 비누였습니다. 그걸 사라더군요. 처방이냐고 물었습니다. 아니었습니다. 몸에 좋다더군요. '무좀'에.. 아.. 정말 짜증이 나기 시작했습니다. 당연히 거부했습니다.
약국에 가서 약을 지었습니다. 약사가 물었습니다.
'가려우세요?'
'아뇨?'
'그런데 왜 항 히스타민제가 들어있지? 간지럽지 않으면 빼고 드세요'
'...'
정말 짜증이 겹치기 시작합니다. 약값이 3만원이 넘었습니다. 진균약이 비싸다고 하더군요. 나중에 환급받기는 했지만 약값이 8천원이었습니다.
아무튼.. 약 꼬박꼬박 챙겨먹고 약도 잘 바르고 처음에 좀 나아지는가 싶더니만.. 2주가 지나도 완전히 없어지지가 않습니다. 더욱 황당한건 다른 곳에도 자꾸 번진다는거죠. 한달이 지나도 낫기는 커녕 이젠 팔에도 생기고 배에도 생기고 다리에도 생기고.. 아.. 정말 짜증나겠죠?
다른 병원을 가 봐야겠다고 생각하고 맵검색을 했더니 학동역 근처에 한군데가 있더군요. 오늘 몸을 추스리고 나갔습니다. 있어야 할 병원이 없더군요. 병원을 찾아 걷기 시작했습니다. 보이는건 치과, 성형외과, 산부인과 뿐.. 이비인후과도, 피부과도 보이지 않네요.. 포기할 시점이 되었을 때 하나 발견했습니다. 신기하게도 '피부과' 입니다. '피부비뇨기과'가 아니고.
주변을 보니 강남구청역이군요. 전철 한정거장을 걸어온겁니다. 들어갔더니.. 전형적인.. 80년대 병원의 풍경입니다.
진찰이 시작됐습니다. 나이가 지긋이 드신 의사입니다. 손으로 직접 다 기록하는군요. 조명이 장착된 돋보기를 이용해서 자세히 살펴보시고, 제가 증상을 얘기하는걸 귀기울여 듣습니다. 중간에 잠시 얘기를 멈췄더니 더 얘기하라고 합니다.
저는 팔만 잠깐 보여드리고 몸에도 났다고 했더니 전부 다 보네요.. 챙피해라~
차근차근 설명이 시작됐습니다. 두가지 가능성이 있다는군요. 바이러스성 머시기(이건 진균이 아니죠?)와 건조할때 발생하는 피부염.. 온탕에 들어가지 마라, 자주 씻지 마라는 충고서부터 대처법이 주욱 나옵니다. 오옷~~~ 강남에 이사와서 이런 병원은 처음입니다.
내일 한 번 더 보자는군요. 약을 써 보고 반응을 보자는 얘기였습니다.
기분이 오랜만에 너무 좋았습니다. 환자를 기분나쁘게 대하지도 않고, 사소한 증상이라고 무시하지도 한고, 강남에서 이런 의사는 처음입니다. 선생님이라고 불러야 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처방전을 받아들고 약을 어디서 지을까.. 집근처에서.. 아니지.. 집근처엔 약국이 없습니다. 감기 걸렸을때도 그래서 죽는 줄 알았죠. 근처를 봤습니다. 바로 밑에 역시 후질그래한 약국이 있군요. 들어갔습니다.
인상이 너무 좋은 백발의 할아버지 약사분이십니다.
약이라고 달랑 알약 한 알 들어있는 봉지 한개랑 바르는 약. 딱 두가지네요. 약에 대해서 자세히 설명을 해 주시네요. 약값은 1500원이 나왔습니다. 제가 위의 병원도 그렇고 여기도 옛날 스타일이라고.. 강남에선 둘 다 처음보는 풍경이지만 맘에 든다고 했더니 그분도 할 말이 많으신지 여러가지 얘기를 해 주셨습니다.
근처에 피부과가 없어서 먼데서 걸어왔다고 했더니만 학동역에 하나 있긴 한데 의사들이 돈되는 비뇨기과에만 치중한다고 그러더군요. 그 피부과 의사는 비뇨기과 환자가 오면 그냥 되돌려보낸답니다. 오로지 피부과만 고집한다고 하더군요. 그리고 그 학동역의 의사가 이곳으로 와서 진찰 받는다고 하더군요. 뜨아...
우리나라의 의료현실에 대한 얘기들도 많이 오고갔습니다. 적어도 이 두 분은 '돈'을 위해 의술과 약을 파는 분은 아니라는 느낌이 오더군요.
강남에서 이런 분을 만났다는게 오늘은 정말 기분이 좋았습니다.
세상에 아마도 이런 분들은 꽤 많이 계시겠지만 이곳 강남에서 만났다는건 큰 행운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젠 제가 정말 믿을 수 있는 의사 '선생님'이 또 한 분 생겼습니다.
이비인후과는 대림동의 '김종화'선생님. (항상 애기들로 디길거림.. 그만큼 부모들이 믿는다는 얘기죠)
안과는 신풍시장근처의 '손..' 헉.. 이름이 생각 안난다.. 아무튼 손안과.
치과는 보라매 공원 근처의 '김봉조'선생님.. 제가 다른 치과에 갔었는데 이빨을 여섯곳을 때워야 한다고 하더군요. 왠지 미심적어서 같아서 집근처의 이곳에 갔었는데.. 이빨이 착색됐을 뿐 썩은게 아니라면서 그냥 돌려보내고 돈도 안받더군요. 자신이 한게 아무것도 없는데 왜 돈을 받냐고 하시던 분입니다.
이런 존경받을 수 있는 '선생님'들이 많아질 수 있게 교육체계도 개선되고 제도적으로도 받쳐줘서 좀 더 살기 좋은 세상이 됐으면 좋겠습니다.
오늘은 '무좀'의 오명도 벗고 좋은 분들을 두명이나 만날 수 있어서 보람있는 하루였습니다.
PS. 내과나 외과, 이비인후과 등 강남 지역에서 추천할만한 곳 있으면 제게도 좀 가르쳐주세요. 근처엔 정말 쓰레기의원에 약국도 없고 시장도 없고.. 어쩌다 아프기라도 하면 정말 고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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